No. 1493 [칼럼니스트] 2009년 2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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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에 대한 오해와 실제 - 한문서당 이야기 04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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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공부를 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요? ‘천자문(千字文)’도 배운 적이 없거든요.” 한문공부를 시작해 보겠다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천자문’도 모를 정도의 백지상태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뜻이다.

그런 이들에게 “천자문은 한문기초교재가 아니라 사실은 종합완결판이다. 천자문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등 사서삼경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철학에 두루 통해야 한다”라고 답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걸 읽으려고 한문을 배우려 하고, 그 시작을 ‘천자문’으로 잡는데 앞뒤가 바뀐 말을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반응은 무리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천자문’이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아동들은 지적수준이 처음부터 그렇게 높았는가, 아니면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일게 된다. 눈치 빠른 사람은 금방 후자임을 깨달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천자문의 맨 처음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은 천자문을 한 번 들춰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하고 서당 개도 읊을 줄 안다. 그러니 기초교재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를 풀이하는데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인데 ‘하늘이 검다’에서 누가 수긍할 것인가. 이는 ‘주역’ 64괘 중 ‘곤’괘 ‘문언전’에 나오는 말이라 ‘주역’을 모르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막 세상 사물에 눈을 뜨기 시작, 하늘은 파란 걸로 아는 어린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천자문 내용 거의가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일찍이 연암 박지원도 천자문의 이런 모순을 예로 들며 기초교재로서 부당함을 지적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보다 더 신랄하게 당시 교육실상을 비판했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지었다고 한다. 한 구에 넉자인 사언고시(四言古詩)로 총 250구(句),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거기에는 숱한 고사와 고전 내용이 녹아 있어 그걸 이해하기가 녹록치 않다.

그걸 기초교재라고 하니 무리가 없을 수 없다. 좀 과장하면 영어공부 하려는 어린이들한데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부터 가르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서당에서는 ‘천자문’을 기초과정에 넣고 있다. 현재로서는  달리 분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은 정말 기초부터 배우려는 사람들과 ‘주역’ ‘노자’등을 배우며 더불어 천자문을 읽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그것이 바로 ‘천자문’의 모순과 실상이다.
(200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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