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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09:19) from 211.172.217.212' of 211.172.217.212' Article Number :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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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은 개판?
  박연호 (ynhp@naver.com)

                             한문은 개판?
                                         <한문서당 이야기 02>

爲文, 爲國, 爲詩의 爲는 다 같지만 뜻은 모두 다르다. 爲文은 ‘문장을 짓다’이고 爲國은 ‘나라를 다스리다’  爲詩는 ‘詩經을 읽다’로 번역해야 한다. 같은 글자가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은 어느 문자에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자는 그게 매우 심하다.

한문에서 가장 번역하기 힘든 其, 將에 비하면 爲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其와 將은 쓰임에 따라 뜻이 40가지를 넘는다. 한문을 대하는 사람들이 한자의 이같은 다의성에 가장 많이 곤혹을 겪는다.

한문은 띄어쓰기가 아예 없어 이 또한 구두점을 어디 찍는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이 역시 한문 배우는 사람들을 헤매게 만든다. 가장 많이 드는 예가 不可不可이다.  不,可不可 하면 ‘可도, 不可도 없다’이고 不可,不可하면 ‘不可하다.不可하다’로 不可함을 강조하는 말이 되고 不可不,可하면 ‘不可不(하지 않을 수 없어)可라고 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 세 경우의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또 한문은 단어의 성분이 제멋대로(?)다.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말장난 비슷하게 드는 예가 人人人人人 이다.  ‘人(사람이면) 다 人(사람이냐) 人(사람이) 人(사람다워야) 人(사람이지)’ 식으로 풀이하는데 같은 人자가 주어, 서술어, 부사구 등 가지가지다.

 위의 예들은 한문의 복잡성과 애매성을 지적하는 극히 일부분의 예에 불과하
다. 그러니 한문 독해력을 기른다는 것은 달동네를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 번지수가 일정한 순서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뛰고 마구 뒤엉킨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기분이다.

서당에서 툭하면 나오는 수강생들의 불평불만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선생님들은 그때마다 이런 점을 되풀이하면서 하나하나 극복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승 한 분이 “그러면 결국 한문은 개판이란 말이네요?” 하며 불쑥 내뱉었다. 순간 강의실이 뒤집어졌다. 도를 닦는 여승과 ‘개판’이란 비어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전혀 웃지도 않고 진지하기만 한 그녀의 표정이 더욱 배꼽을 쥐게 했다.

선생님도 정색에 가까운 표정으로 “전혀 개판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며 일단 수긍을 한 뒤, 그게 또한 한문의 묘미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학동’(?)들도 양측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달동네 길이 아무리 난마처럼 얽혀 있어도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해지듯 한문책 속 방황도 언젠가는 요령을 터득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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