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75 [칼럼니스트] 2012년 12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달(達)과 키쓰(Kiss) - 한문서당 이야기09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논어 ‘위령공’편 40장에서는 ‘언사는 뜻만 통하면 된다 (子曰 辭,達而已矣)’고 주장하고 있다. 達은 ‘말과 글은 서로 통하면 되지, 풍부하고 화려함을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주자가 덧붙여 설명했다.

모든 고전이 그렇듯 논어에도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는 좋은 내용이 많다. 읽는 대목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 부분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2천5백년 전 공자와 8백년 전의 주자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생활 속의 말과 글이 너무 번잡하고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겉멋만 잔뜩 든 언사가 범람해, 가장 중요한 소통 기능이 부실해진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도 문장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KISS(Keep It Short and Simple. 짧고 간결하게 하라)다. 나아가 일상생활도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유려한 문체와 다의성 그리고 모호함을 원천으로 삼는 문학에서도 헤밍웨이나 ‘도둑일기’의 김용성은 건조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들 글은 형용사, 부사 등 수사가 가능한 한 절제돼, 앙상한 겨울나무를 대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대신 감동은 진하게 남는다.

그런데 간결과 명료함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에서 사용되는 말과 글까지 겉치레가 적지 않아 핵심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형용사, 부사가 들어간 기사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유럽의 어느 유명 편집자처럼 유난히 굴 것까지는 없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수식어는 별로 없지만 쉬운 말 놔두고 굳이 어려운 용어를 즐겨 쓰는 이들이 많아지자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는 ‘좀 더 알아듣게 말합시다’라는 주제의 사설까지 발표했다.

좋은 말솜씨나 말 많은 것을 매우 싫어했던 공자가 오늘의 이런 실상을 접하면 뭐라고 할까. 논어나 옛 한문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점들을 상상해보는 맛 또한 괜찮을 것 같다.

-2012.07.02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 - 한문서당 이야기 01*
한문은 개판? - 한문서당 이야기 02*
인터넷장애인 모임아 아니래도 - 한문서당 이야기 03*
'천자문'에 대한 오해와 실제 - 한문서당 이야기 04*
090315-1496 박연호 한문서당도 서울 집중인가 - 한문서당 이야기 05*
090421-1502 박연호 글 읽는 소리 - 한문서당 이야기 06*
090507-1505 박연호 호(號)는 좀 거시기하니 애칭 정도면... - 한문서당 이야기 07*
090719-1513 박연호 한자와 한문, 그게 그거 아냐? - 한문서당 이야기 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