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13 [칼럼니스트] 2009년 7월 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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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한문, 그게 그거 아냐? - 한문서당 이야기 08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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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화센터에서 한자와 한문을 강의할 때, 가르치는 내용이 뭐냐고 한 친구가 물었다. 앞 시간은 한자, 뒷 시간은 한문을 강의한다고 하자 무슨 말장난을 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문을 잘 몰라 책이나 신문에 나온 한문을 잘못 읽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한자를 잘 몰라 책이나 신문에 나온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친구만 탓할 수 없었다. 한자는 낱낱의 글자를 말하고, 한문은 이것들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말하면 글자를 알면 문장은 저절로 되는 것이지(한자가 뜻글자이므로) 왜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어느 정도 알아들을만한 이들에게는 영어, 국어와 한문의 차이점을 들어 설명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之(갈 지)자를 보자.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心之所之謂之志’에 이르면 다르다. 心之(마음이)의 之는 주격조사고, 所之(가는 ‘바’‘곳’ 또는 ‘것’)의 之는 ‘가다’며, 謂之(그것을 ...라고 말한다)의 之는 대명사다.

즉 ‘마음이 가는 바, 그것을 일러 志(뜻)이라고 말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한자 之(갈 지) 만 알아가지고는 해독이 되지 않는다. 之의 기능은 이밖에도 많다. 그러니 한문에서 之를 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례가 무수히 많다. 어느 한학자가 ‘ 한자 其(그 기)는 쉽지만 한문에서의 其는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其 역시 위치에 따라서 대명사,  조사 등 기능이 여러 가지다. 가끔 한문서당에 다닌다고 하면 한문을 많이 알겠다고 하면서 몇 천 자쯤 아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역시 한자와 한문의 차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급수시험 1급 이상(한자 3천5백자 이상)을 취득한 이들 가운데서도 이 차이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더러 있다. 물론 급수시험 취지에 따르면 어느 과정 이상을 통과하면 고전이나 고문헌의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실상은 좀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한문의 기초과목인 ‘계몽’ ‘동몽선습’‘격몽요결’등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자, 한문의 특성에 따른 여러 가지가 그 이유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쓰는 일반 한자는 거의가 일본식 한자인데 한문의 한자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어 온 것들이라는 차이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일본이 서양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표기한 한자들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愛人하면 ‘사랑하는 대상’인데 전통한문에서는 ‘남을 사랑하다’이다. 人物도 일본식 한자는 ‘사람’을 뜻하지만 전통한문에서는 ’사람과 사물‘을 의미한다. 熱中은 ’매우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한문에서는 ’속이 타다‘이다. 이런 차이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한자가 많이 출제되는 급수시험을 통과해도 한문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 상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자급수시험 1급, 특급에서 최고점수를 받고, 그 방면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한 친구가 농담으로 늘 ‘나는 한자는 잘 알아도 그게 넉자 이상 붙어 있으면(이른바 한문) 헤맨다’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기초과정은 물론 ‘논어’ ‘맹자’ 등 사서 이상을 잘 통해도 한자급수 시험 1급 이상을 취득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자와 한문의 차이, 일본식 한자와 전통 한자 사이의 괴리 등이 빚은 현상이다.(200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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