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는 소리 - 한문서당 이야기 06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과거에는 글공부한다 하면 소리 내서 읽는 것이었다. 이른바 성독이다. 눈으로만 읽는 묵독은 비효과적인 방법이라 하여 기피했다. 사실 소리 내서 읽는 것과 묵독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금 영어공부도 마찬가지다. 모두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며 이를 권장한다.
예전 서당은 각자 진도가 달라 읽는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데다 너나없이 크게 읽어야 하기 때문에 마치 오뉴월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이었다.
달빛 고요한 밤에 선비가 낭랑한 소리로 글 읽는 것은 주부들의 다듬이 소리, 갓난아이 소리와 함께 삼희성(三喜聲)이라 하여 최고 높이 쳤다. 오죽하면 글 읽는 소리에 매혹된 이웃 처녀가 담장을 넘어가 사랑을 고백했다는 야담까지 생겼겠는가. 놀란 선비가 자기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한 겨를이 없다며 처녀 종아리를 때려 쫓아낸 뒤 다음날 이사를 갔다는 것이 전설의 원형이다. 선비는 정인지 조광조 등 여러 사람으로 대입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한문 배우는 사람도 극히 드물고 성독하는 이들은 더욱 적다. 그럼에도 한국고전번역원 등 한문교육기관 등에서는 강력히 성독을 권한다. 글공부가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런 덕분이다.
처음에는 여성이 한문을 낭독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들으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런 걸 예전에는 원천봉쇄했으니...
그러나 일반인들은 아직도 여성의 글 읽는 소리에 익숙하지 않아 별 우스운 일이 다 생긴다. 한 주부는 날마다 ‘논어’ '맹자‘등을 소리 내서 읽고 오후에는 서당에 나가는 일을 몇 년 반복했다. 그랬더니 하루는 앞집 할머니가 오더니 ’요즘 돈은 잘 버느냐’ 묻더란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니 어렵게 입을 떼는데 자기를 무당으로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여자가 날마다 아침부터 낮까지 뭘 소리 내서 외우다가 저녁에만 나가니 무당이 경 읽는 연습 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여성의 한문 읽는 소리뿐만이 아니다. 서당의 한 친구는 한학의 대가가 성독한 테이프를 집에서 틀어놓고 ‘대학’을 듣는데 부인이 질겁해서 묻더라는 것이다. 집에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웬 염불이냐는 뜻으로.
예전 삼희성으로 떠받들어지던 한문 읽는 소리가 이런 지경이 되었다. 하긴 같은 대접을 받던 다듬이 소리는 아예 사라졌고, 간난아이 울음소리는 소음공해로 치부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글 읽는 소리인들 온전히 받아들여지겠는가.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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