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2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8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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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빵한' 남자

표준말이 아닌 '얼빵하다'라는 말을 널리 보급한 공로는 이병곤(李炳坤) 부산경찰청장에게 있다. 표준말로 하자면 '얼뜨다' 또는 '어리숙하다'라는 말이다. '얼빵하다'는 높은 지위에 있는 공직자가 공식석상에서 쓸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이청장이 이 말을 쓴 것은 18일 남자 직원 400여명,여자 직원 10여명을 모아놓고 '직원 교양교육'을 하는 자리에서였다.“여자가 똑똑하면 피곤해.여자는 좀 얼빵한 그런 맛이 있어야 해.”

그는 여성을 비하한 이 발언 때문에 빗발치는 비난을 받고 이틀만에 사과했다. 그의 발언에서 '얼빵하다'라는 말은 비하의 강도를 현저하게 높이는 묘한 효과를 나타냈다.부하 직원에게 교양교육을 하러 연단에 오르기 전에 자신부터 교양교육을 받았어야 옳다.말 한 번 잘못하고 혼이 난 그를 여자들이 '얼빵한' 남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올해는 고위 공직자의 여성 비하 실언이 많았다. 환경부 1급 공무원인 김(金)아무개씨가 대낮에 폭탄주를 마시고 여성 장관을 지칭하면서 실없는 말을 했다가 긴 관직생활을 마감했다.신(辛)아무개 국회의원은 남북이산가족 서울방문단 환송 만찬석상에서 여자들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고 말한 것이 보도돼 곤욕을 치렀다.이(李)외교통상부장관이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는 옮기기 민망할 정도로 저급한 것이었다. 말썽이 커지자 그는 여성특별위원회를 찾아가 사과했다.

하찮은 일 가지고 왜 떠드는가 하겠지만, 여성 비하는 인권 침해인 까닭에 하찮은 일이 아니다.개인의 여성관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도 있지 않은가 하겠지만,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公僕)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아준 일꾼이다.시정 사람과 똑같아지고 싶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일이다.

고위 공직자 입에서 툭하면 여성 비하 발언이 나오는 것은 국민을 가벼이 보는 마음보가 있는데다 입까지 가벼워서다.옛 선비들이 중히 여긴 '말 삼가기'(愼言)는 지금도 가치있는 덕목이다. 말을 아무렇게 해도 잠자코 듣고 있을 '얼빵한'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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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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