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2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25-b호
1999.09.19 창간 SEOUL COLUMNISTS SOCIETY http://columni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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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부자병 애플루엔자

애플루엔자 증상이라는 말이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이는 부유하다는 뜻의 영어 애플루언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인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 신조어로 주식투자, 복권당첨 등으로 갑자기 떼돈 번 사람들이 무력감, 권태감, 자책감 등에 빠지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한 마디로 벼락부자가 걸리는 병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오거나 엄청나게 많으면 혼란과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쥐기만 하면 만사형통할 것 같은 돈도 마찬가지다.가장 흔한 예가 거액 복권당첨이다.16년 전 서울에서 행상을 하다 1억원짜리 주택복권에 당첨되면서 장사를 때려치우고 흥청거리던 50대 남자가 최근 쫄딱 망했다.돈이 생기자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며 부인한테는 생활비는고사하고 폭행만 일삼다 쇠고랑을 찬 것이다.결국 돈이 원수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40대 여인은 1997년에 1백30만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됐으나 남편한테 숨기고 이혼했다.그러잖으면 남편과 절반씩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해 말 복권회사의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면서 들통났고 법원은 전액을 남편한테 넘기라고 판결했다. 이밖에도 복권당첨이 가져온 불행으로 인생을 망친 사례가 세계 곳곳에 숱하다.

최근 주식 등 재테크로 벼락부자가 늘어나면서 신세망친 사람들이 미국에서 부쩍 많아졌다.엄청난 돈이 갑자기 생기면서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자 의욕상실, 향락,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적 허무감, 자살충동, 사람 기피증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맞아 치료받지 않으면 안될 중환자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애플루엔자 환자를 상대로 상담·치료해 주는 컨설팅업자들이 호황을 누리며 돈을 긁기 시작했다.그래서 돈은 돌고 도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국내에서도 우리 사주, 코스닥 등으로 떼돈을 번 일부 주식갑부들이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한다.일도 투자도 시들해져 날마다 수백만원, 심지어는 1천만원대 호화판 식사와 술판까지 벌이지만 권태와 허무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무력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1년 열두 달 하루같이 쪼들리는 서민들로서는 죽어도 좋으니 단 하루만이라도 걸려보고 싶은 병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는 이들에게 주로 부자의 사회적 책임과 자선행위의 기쁨을 집중적으로 교육, 돈더미에 짓눌린 불행에서 빠져나오도록 치료하고 있다.가졌다고 부자가 아니라 이를 잘 다룰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임을 기르치는 것이다.우리 나라 애플루엔자 환자들도 여기에 귀기울이면 인생 황폐화 진전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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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국민일보 2000년 01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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