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2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23호
1999.09.19 창간 SEOUL COLUMNISTS SOCIETY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방명록
정치인들의 저술

총선 또는 지방의원 선거철이 되면 출판가도 꽤 술렁인다. 정치지망생이나 후보자들이 책을 내느라 분주해지기 때문이다.그러나 극히 일부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고뇌 등을 찾아볼 수 없다.

먼저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현역의원,중견정치인들은 그 바쁜 중에도 언제 썼는지 모르지만 대개 자화자찬 일색이다.자신의 업적을 널리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조금쯤 과장한들 그리 나무랄 일은 아니다.또 그런 책들과 일반독자의 구매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출판사는 찍어만 주면 된다.그 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편집 교정에 민감하지 않다.아니 꼼꼼히 만들려 해도 정치인들 쪽이 여유가 없어 충분히 손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들은 책 출간이 최종목적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선거운동에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바쁘다.원고를 가져온 날부터 독촉하므로 빨리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다.그런 판국에 책 만드는 정성이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정치지망생이나 초보들의 책은 더욱 그렇다.이력,경력이 보통 한 쪽이 넘고 이런저런 유력인사들의 추천사가 앞뒤에 정신없이 붙어 펴보는 순간 흥미를 잃게 한다.내용이 부실한데다 그나마 양이 모자라 사진,도표 등으로 일관성 없이 채우니 좀 가혹하게 말하면 책이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출판사들이 책을 만들어주는 이유는 뭘까.첫째로 지연, 학연, 혈연관계나 평소 지지하던 정치인이기에 한 부조 삼아 해 준다. 유력출판사일수록 그 책의 신뢰도가 높아지므로 매우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출판사 이름과 표지장정,편집 교정 등의 수준에 비해 내용이 떨어져 정성들인 포장이 민망해지는 수가 더러 있다.

비용은 출판기념회에서 뽑는다.정치인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면 의상,보석 가게 앞을 그냥 지나가는 여자와 다를 바 없다. 비용도 어느 정도 뽑고 해당 주민들에게 자신도 과시하는 그 좋은 기회를 왜 놓치겠는가.그러려면 애당초 책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저자와 출판사 모두에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출판인이나 출판사가 없는 정치인들은 처음부터 자비로 해야 한다.정치지망생 또는 초년병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그러나 이 경우는 대부분 외상 없는 맞돈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대금을 치르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만 유달리 그러는 이유가 뭔가.정치인 아닌 다른 저자들은 뒤에 결산한다. 정치인들만 선금을 내도록 한 것은 자신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 정치인들이 워낙 서둘러 책을 독촉하고 비서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바쁘게 돌아가는 통에 일을 해서 건네고 나면 관계자들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투표직전은 막바지 운동에 온 정력을 쏟아야 하므로 그러리라 했다.그래서 이왕이면 당선되라고 가능하면 자신도 표를 거기에 찍었다.

그러나 당락이 판명되고 나면 확 달라졌다.당선자들은 순간 목에 힘이 들어가 군림하므로 출판사와 저자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권력자와 피권력자로 바뀌어 비서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그러고서는 누가 그 돈 떼먹을까봐 걱정이냐고 핀잔을 주며 차일피일이었다.어이없는 노릇이었다.

낙선자는 한 수 더 떴다.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느냐고 도리어 성깔을 부렸다.책 만들어 달라고 짓던 아쉬운 표정은 자취도 없었다.완전히 배째라였다.

이런 것이 누적되면서 출판사들도 달라졌다.선거 때 정치인의 책은 자신들이 아쉬워할 때 미리 돈을 받지 않고는 해줄 수 없다는 관례가 슬슬 정착한 것이다.후불제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정치인이 지금도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그런 출판사들은 연륜이 얼마 되지 않아 과거의 뜨거운 맛을 잘 모르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한 출판인은 이렇게 말했다.“책이 예전과 달라 누구나 낼 수 있는 것이라지만 부실한 내용을 부끄러움 없이 출판하는 용기,비용문제에서 자신들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한 태도가 정치인들의 또다른 특징을 이루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그 책들이 종이공해가 되어 나도는 것올 보면 자신도 공모자 같아 낯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1.19
[새 책]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 대한매일 2000.01.10

열화당 이기웅 사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뤼순 감옥에 이르기까지 안중근 의사에 관한 항일자료를 정리한 ‘안중근 전쟁,끝나지 않았다’ (열화당)를펴냈다.값 8,000원.

이 책은 연대기로 보는 안중근과 그의 시대,뤼순감옥에서의 검찰관 신문조서, 뤼순 법원에서의 공판시말서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안의사의 재판기록과 신문조서의 전문을 실어 정확성을 기했고 편집과 디자인을 참신하고도 실용적으로 꾸며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사장은 서문에서 “일본제국 법원의 공판기록을 70년대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한편의 장엄한 교양시였다”면서 “일반독자를 위해 쉽게 쓴 글인만큼 젊은이들에게 널리 읽혀 자신의 삶의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낸 이기웅 열화당 사장은 서울칼럼니스트모임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언제든지 해지하실 수 있습니다.
E-mail
구독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