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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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보다 무서운 영어

성균관대가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고도 영어실력이 소정의 기준에 미달한 학생 22명의 졸업을 유보했다.토플 5백점이상 또는 토익 6백점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특정학교의 자체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앞서 서울대총장도 입시에 영어면접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한마디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대학입학,졸업이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간다 하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입학,졸업에 필요한 영어기준이 어느 정도냐가 아니라 우리의 기본 생존까지도 규정하는 영어의 공세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까 하는 점이다.그만큼 가공할 파괴력을 앞세우고 있어 예측불가능이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언어는 어떤 무기도 능가하는 탁월한 무기이다.원자탄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언어다”라고 한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전 세계를 향한 영어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그것도 미국식 영어가 그렇다.같은 영어권의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에 미국영어가 무서운 기세로 침투해 청소년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있으며 종주국인 영국마저 아연실색하고 있다.세계 인터넷인구의 70%이상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게 거의 미국 영어다.그러니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독일 등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들도 미국 영어의 공습에 당황하며 고심하지만 계속 밀리는 추세다.반대로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 국민들이 우수한 경쟁력으로 미국 등 세계의 디지털시장에 대거 진출하는 것도 영어구사력이 주요 원인이다.

한편 경제대국 일본이 그 힘에 비해 아시아의 중심지로 강력하게 부각되지 못한 원인을 영어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일본인들의 영어가 평균적으로 뒤지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불편을 느껴 발길을 동남아로 돌린다는 것이다.한국은 영어도 뒤진데다 여러가지 여건이 일본에 비해 훨씬 떨어지므로 더욱 불리한 입장이다.

미국의 경제력,군사력을 앞세운 영어가 적자생존법칙에 따라 세계 언어의 정글을 제압하면서 약소민족의 언어들은 소멸하거나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만주족 1천여만명 가운데 사용하는 사람이 1백명도 안돼 5년이내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만주어와 착잡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 대학들이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타당하다 하겠다.그러나 영어라는 공룡 앞에서 자꾸만 왜소해지는 우리 말의 앞날이 걱정스럽고 안쓰럽다.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국민일보 2000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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