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0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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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무거운 짐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한 때는 극복해야 할 존재였으며 때론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사람, 한동안은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최근 존 휴즈가 쓴 '아버지와 나'를 읽으며 우리시대의 아버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림과 함께 한 뜸 한 뜸 자수처럼 수놓아 가슴을 저리게 한다.

늘 아득한 거리에 존재했던 아버지, 삶의 방정식이 달라 불만이었던 아버지, 고집스럽고 꾸지람만 하는 애증의 관계였던 아버지가 치매증상으로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잃어가자 아들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했을 때 두 사람은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몇년전 출판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김정현의 '아버지'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모두 버림받고 죽음의 직전에 이르러서야 아내와 자식의 사랑을 회복한 아버지는 수많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의 감동은 김경연씨의 고백수기 '아버지! 죄송합니다'로 이어졌다. 시집가서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고 참회한다. 꼽추 아버지에 대한 자기모멸, 수치, 회한, 회개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도 우리나라에 소설과 영화로 소개되어 아버지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딸과 아내가 죽어 가는 와중에도 깃발을 흔들며 간이역을 지키던 철도원이 결국은 가족과 일터를 모두 잃고 쓸쓸하게 떠난다.

조정현의 '가시고기'도 가족해체시대에 목숨까지 내건 한 아버지의 아들 사랑을 그려냈다. 아내가 가출한 이후 백혈병을 앓는 아이를 위해 자기 몸의 일부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아들을 낫게 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아버지. 그는 알을 낳은 후 사라져버린 암컷 가시고기 대신 홀로 남아 알을 보호하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 가시고기 마저 떠나간 뒤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버리는 가시고기를 빼 닮았다.

IMF 이후 아버지들의 허리는 더욱 휘어졌다. 직장마다 50대는 사라지고 요즘은 40대가 의기의식을 느끼며 살얼음판을 걷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해체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거리에 떠도는 아버지들도 늘었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 아부지닷컴(www.abuji.com)이 개설돼 눈길을 끌고 있다. 아버지의 어감과 가장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아부지'.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 문을 열었다는 것이 운영자의 변이다.

이 사이트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랑채'와 취업정보를 교환하는 '일자리 주고받기', '생활정보 터' '휴게실' 공간이 있으며 클릭이나 회비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랑 마음 전하기' 코너도 있다. 일상의 얘기들을 주고받는 '토론장'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말못할 고민거리가 넘친다. '상담실'에는 아내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할 고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요즘 아버지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자식 세대의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문화적인 들러리로 전락해 버리는가하면 돈 잘 벌어오는 맘씨 좋은 '아저씨' 정도로 여겨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역할이 바로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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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200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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