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3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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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인터넷 망국론이 일고 있는 까닭은

인터넷이용이 일상화되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의 모습이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기대하는 네토피아는 커녕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우리 인류가 20세기에 발명한 최고의 작품이라는 인터넷. 그 인터넷을 4∼5년전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무척 기대가 컸는데 최근 들어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희한한 사건들을 보노라면 실망감을 넘어서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

모든 사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인터넷은 그 명(明)과 암(暗)이 너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의 밝은 면은 분명히 삶의 질을 상당히 높여주고 있다. 그런데 어두운 면 은 심각할 정도로 많은 부작용을 빚고 있다.

자살·엽기·음란·엽기 등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이트들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면서 갖가지 해악을 끼치자 언론에서는 「인터넷 망국론」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언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인터넷문화는 싹도 틔우기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충격적인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인터넷게임에 중독된 14살짜리 중학생이 자신의 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학생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살인을 맘껏 즐기는 것이 나의 계획이고 살인이란 걸 꼭 해보고 싶다" 는 글을 남겼다고 하니 끔찍한 일이다.

엽기사이트에 심취하다 자살한 학생도 있다. 13살 짜리 딸아이인 이 학생은  평소 인터넷 엽기사이트에 자주 들어가 피를 흘리며 숨진 사람의 사진과 동영상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인명을 경시했거나 죽음에 대해 둔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폭탄사이트를 만들었다가 붙잡힌 15살짜리 남학생은 "폭탄을 내다 판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가 하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인기연예인의 성행위 비디오 파일을 유포해 구속된 17세 소년은 "돈 안 받고 무료로 나눠줬는데 오히려 좋은 일 했다"며 따졌다고 하니 이들 청소년들의 가치관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람을 촉탁살인한 청년이 "죽여달라고 해서 죽여주었다"며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우리는 TV에서 보았다. 이쯤 되면 무료로 음란 비디오파일을 유포하고, 폭탄제조법을 가르쳐 주는 일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변태적인 체위의 동성연애·집단 섹스·수간(獸姦) 등 비정상적인 성욕망을 다룬 홈페이지의 운영자 대부분도 넷키즈로 불리는 10대 청소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지역의 한 중·고등학생모임을 이끌고 있는 학생의 말이 더 충격적이다.
"그런 현상들은 마땅한 놀이문화를 찾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새로운 놀이문화일 뿐이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신들만의 문화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성세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면 따끔하게 반론이라도 제기할 터인데 그렇게 말하는 학생보다 더 큰 자식을 키우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같은 사고방식을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잘못된 것이라고 나무라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전문가들은 자아 정립이 덜 된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이라는 딴 세상을 살다 보니 결국은 정서적·문화적 해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빠져 타인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자기 중심적이 되고 따라서 무의식 속에 파괴적 심리가 자리잡아 사이버 패륜이 일어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는 사실 기성세대에게는 남의 세상이나 다름없다.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들이 먼저 알고 선점한 공간이 되다보니 기성세대는 사이버문화에 관해 전혀 모르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기성세대들은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안될 말이다. 당장 인터넷이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대책마련에 힘써야 한다. 물론 정부당국과 학교, 가정, 시민단체 등이 함께 나서야 한다.

건전한 인터넷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사이버 사회악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관련 법규나 제도를 보완하는 일도 시급한 일이다.

인터넷혼돈상태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을 하루빨리 밝고 건전한 세상으로 이끌어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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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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