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명의(名醫) 허준(許浚)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동의보감’(이은 성 지음)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자신의 몸을 제자에게 해부용으로 내 주 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실천한다.“나의 문도 허준이 세상의 어떤 병고도 마침내 구원할 만병통치의 의원이 되길 빌며 병든 몸이나마 너 허준에게 주 노라”는 유서를 남기고 밀양 천황산 얼음골에서 자진(自盡)한 스승의 시체 를 사흘에 걸쳐 해부한 제자는 “이 허준이 의원이 되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이들을 구하는데 게을리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 거든 저를 벌하소서”라고 외치며 통곡한다.‘소설 동의보감’의 압권으로 꼽히는 이 장면은 의사의 길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지만 사실 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이다.허준의 실제 스승은 소설속에서 허 준의 적수로 등장하는 양예수이고 유의태는 허준보다 2백년 늦게 태어나 경 상도 일대에서 역시 명의로 이름을 떨쳤던 정조시대의 유이태(劉爾泰)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지적이다. 메마를대로 메마른 현실에서 이 소설속 허구의 감동이 현실화 됐다.대한공 중보건의사협의회와 전공의협의회 소속 의사 400여명이 사후 장기기증을 약 속하고 그 중 40여명은 자신의 주검까지 후배들을 위한 해부실습용으로 내놓 겠다고 서약했다.“내 몸을 기꺼이 환자에게”라는 기치아래 월간 ‘청년의 사’가 펼친 장기기증 운동이 거둔 성과다.이 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의사 들이 20∼30대의 젊은층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그들의 헌신적인 직업정 신과 인간애가 있는한 우리의 미래 또한 건강하고 희망에 찰 것이기 때문이 다.물론 장기기증이나 시신의 해부실습용 제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사랑 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을 희망한 등록자가 13만명을 넘어섰고 박찬 호,김병지,고두심,김원준 등 프로스포츠와 연예계의 유명인들도 이미 장기기 증을 약속한 바 있다.그러나 젊은 의사들의 이 운동은 생명나누기의 고귀함 을 다시 일깨우고 장기기증에 대한 일반인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시켜 보 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실천을 하도록 자극할 것으로 기대된다.미국에서는 장기이식 수술의 90%가 사후 장기기증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경우는 10%정 도에 불과하다. 이들의 운동이 장기이식 수술에 대한 국가차원의 통합관리와 운영 및 장기 기증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촉구하고 있는점도 주목할 만 하다.현재 장기이식 수술은 각 병원 마다 별도로 행해지고 있고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장기기증 운동 기구들도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효율적인 정보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2000년부터 국립의료원에 통합기구가 생기지만 예산과 인력배정이 미흡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이 요구된다. 임영숙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