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젊은 교수 두명이 사표를 내고 이달 초 한국과
학기술원(KAIST)의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연구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이 서울대 조교수와 부교수 신분을 버리고 고등과학
원의 3년 계약직 연구교수 신분으로 옮겨간 이유다.
이 소식은 신선함과 함께 착잡한 느낌을 아울러 갖게 한다.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이 보장하는 명예와 안정등 여러 이점을
과감히 버리고 학자로서의 길을 충실히 걷기로 한 결단이 아름답기 때문이
다.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자기 전공분야의 연구실적으로 실력과 권위를 인정
받기보다 어느 대학 교수인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이 서글픈 우리 현
실이다.
한편 착잡한 느낌은 두 교수가 새삼 일깨워준 우리 대학현실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서울대에서 맡은 강의는 주당 6시간,즉 한 학기에 두 과목이었다.미
국의 명문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한 학
기에 한 과목만 맡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
는 “지난 1년간 자정 이전에 집에 들어간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
다.
그러나 다른 대학에 비하면 서울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서울대 이외의 국
립대학 교수들은 주당 9시간씩 강의하며 사립대학에서는 10시간이 넘는 경우
도 많다.올해부터 일부 명문 사립대학이 서울대와 같은 주당 6시간 기준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9∼12시간 강의를 맡는 교수들이 있다.대학 교수들이 강
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연구할 시간이 기본적으로 모자라는 것이다.
우리 교수들의 국제적 학문연구 수준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에 교수
사회가 볼멘 소리로 불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이 불평을 잠재우려면 교수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교수당 학생수가 미국(15명) 일본(18명) 독일(12명)
에 비해 두배가 넘어(36.6명) 이 문제까지 해결하자면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두 교수는 연구시간 부족 이외도 지나치게 복잡한 연구비 신청절차,터무니
없이 낮은 보수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우리 대학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
거점이 되려면 이런 문제점들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특히 서울대는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지원하는 ‘두뇌한국(BK) 21’사업의 중점 지원대상으
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다.이 대학에서 연구할 시간 부족과 대학행정
의 관료주의 때문에 교수가 떠나간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모든 교수가 연
구만 할 수는 없겠지만 뜻있는 교수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
어져야 할 것이다.그런 여건이,학문연구에 도움 되지 않는 외부활동에 몰두
하거나 보직에 연연하는 정치적 교수나 게으른 교수들을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 임영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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