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점수

10년전 베이징(北京)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면서 만난 한 중국인은 영어를 거 의 모국어처럼 구사했다.놀라운 것은 그가 한번도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무용평론가인 그는 미국과 영국의 무용잡지에 정기 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었다.미국에서 20여년 동안 살아온 한국 무용가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보다 발음이 좋다고 감탄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이 26일 밝힌 아시아 국가들의 토플(TOEFL) 점수는 그 중 국인의 영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시험에 98∼99년 응시한 아시아 21개국 및 지역 사람들 가운 데 중국인은 평균 562점으로 필리핀, 인도,스리랑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은 평균 535점으로 다시 네팔,인도네시아,파키스탄,말레이시아에 이어 9위다.

중국보다 토플 점수가 앞선 나라들은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탓에 사실 상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됐던 곳이다.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중국이 1위라고 볼 수도 있다.한국보다 앞선 나라들도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적으로 영어와 깊은 인연을 지닌 나라들이어서 한국의 성적도 나쁜 편은 아닌 셈이 다.그러나 80년대 중반 한국이 505점이었을 때 중국은 470점이었다.한국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이 중국이 큰 걸음으로 앞장서 간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추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우선 언어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 이들이 있다.중국어의 어순이 영어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서로 이어 지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영어를 쉽게 배운다는 것이다.일본어 어순이 우리말 과 비슷해서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우기 쉽다는 주장과 비슷한 논리다.그럴듯 해 보이는 논리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영어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중국 의 영어교육은 우리보다 늦었지만 영어 조기교육은 우리보다 앞서 시작했다. 문법·독해에 치우쳐 듣기·말하기 능력이 떨어지는 우리보다 중국의 영어교 육은 훨씬 합리적이다.지난 95∼96년 토플시험 듣기 평가에서 한국은 평균 50 점으로 아시아 25개국(지역) 가운데 북한 일본 마카오 미얀마와 함께 공동 1 9위를 차지한데 비해 중국은 5위였다.

일본은 이번에 토플 평균점수가 사상 처음 500점을 돌파해 아시아 꼴찌를 겨우 면했다.그 일본의 총리 자문기구가 영어 공용어론을 제안했다 해서 우 리까지 덩달아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잘못된 영어교육은 확실히 개선해 야 할 듯싶다.외국어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약 4 ,300시간이 필요하다는 실험결과가 있다.하루 8시간씩 공부한다면 18개월에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 셈이다.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우리 학교 영어 교육 시간은 1,000시간 정도이다.그러나 영어에 목매달다시피 한 우리 사회분 위기에 비하면 토플점수 아시아 9위는 좋은 성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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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 ysi@kdaily.com
대한매일 200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