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끼 못해 먹이고…"

이청준씨의 소설 ‘눈길’은 우리네 어머니의 지극한 모정(母情)을
보여준다.집안이 몰락해 살던 집을 팔게 되자 어머니는 외지로 공부
하러 간 고등학생 아들에게 그 집에서 “밥 한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보내게 해 주려고” 새 주인의 양해를 얻어 기다린다. 매일같이
빈집을 드나들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면서 아직도 그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 양 안방 한쪽에 이불 한채와 옷궤 하나를 예대로 남겨둔다
.소문을 듣고 찾아 와 집앞에서 서성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더운 밥
지어 먹여서 하룻밤 재워가지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되돌려 떠
나 보낸다.시오리나 되는 장터 차부까지 아들을 배웅하고,하얀 눈길
에 찍힌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다시 돌아 오면서 눈앞이 가리
도록 눈물을 떨군다.아침 햇살에 눈이 시릴 정도로….

16일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상봉 가족들을 위해 마련한 만찬장에서
아흔살의 어머니는 북쪽에서 온 일흔살의 아들 입에 밥과 고기를 넣
어주면서 “손수 밥 한끼 못해 먹이고…”하며 안타까워 했다.북에서
온 오빠를 만난 육순의 남쪽 누이도 “(돌아가신)엄마 솜씨 흉내 내
서 생선찌개 끓여 드리고 싶었는데,오빠한테 밥 한끼 못해 드리고 보
내려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손수 지은 더운 밥 한끼”는 무엇인가.그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자식과 형제들에게 주고 싶은 절절한 마
음과 사랑의 최소한의 표현이다.아무리 호화로운 식당에서 진수성찬
을 대접한다 하더라도 손수 지은 더운 밥 한끼의 정성에는 까마득히
못 미친다.그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귀한 손님에게 더운 밥 한끼를 차
려 내놓는 것이 당연한 예절이다.지금처럼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 식
은 밥이 많이 있을지라도 귀한 손님이 찾아 오면 새로 밥을 지어 대
접하고 식은 밥은 나중 안식구들끼리 먹었다.하물며 오매불망 그리던
자식과 형제들을 반세기 만에 만났는데 손수 지은 밥 한끼 대접 못하
는 그 어머니와 누이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아들이 왔다는 말에
오랜 치매상태에서 깨어나 아들 이름을 부른 어머니도, 건강이 나빠
상봉장에 나가지 못하고 앰뷸런스 안에서 아들의 큰절을 받고 “우리
늙은 애기 왔구나”하며 눈물을 쏟아 낸 어머니도 아마 같은 심정이
었을 것이다.

소설 ‘눈길’에서 어머니는 말한다.“더운 밥 해먹이고 하룻밤을
재우고 나니 그만만 해도 한 소원은 우선 풀린 것 같더구나”이산 가
족들이 지닌 그 ‘한 소원’은 언제쯤 풀릴 것인가.내년에는 가정방
문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지만 오래 헤어졌던 혈육에게 더운 밥
한끼 해먹이고자 하는 이들의 자연수명이 그 열매를 거둘때 까지 기
다려 줄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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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실장
대한매일 200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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