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교육장관회담 유감

 조간신문에 보도된 한·일 교육장관의 악수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한국의
문용린(文龍鱗) 교육부장관과 일본의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문부
상이  나란히 서서 악수하며 웃는 모습은 ‘불행한’역사적 관계를 가진  두
나라 사이의 오랜 앙금이 말끔히 씻어진듯한 착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회담결과는 씁쓸한 느낌을 안겨준다.올해부터 양국 정부 공동부담으 로 일본 국립공과대학에 한국 유학생을 100명씩 보내는 등 학생·교사 교류 를 강화하고,서울과 도쿄에 양국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건립하며,서울대나 정신문화연구원에 동아시아연구센터를 공동설립하는 문제들을 논의한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두 나라 사이 오랜 현안인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공식의제로 상정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처음 열린 두나라 교육장관의 ‘역사적’ 첫 공식회 담에서 이 문제가 의제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앙꼬(팥소) 없 는 찐빵”을 먹는 기분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임진왜란을 한반도 ‘진출’로 왜곡 표현한 부분등을 지난 1983년 우리 교육부가 시정요구한 이후 많이 개선하긴 했으나,아직도 핵심 사항의 왜곡이 여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한국교육개발원이 공교롭 게도 한·일 교육장관 회담이 열리던 날(20일) 밝힌 자료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최근 일본의 고등학교 ‘일본사’교과서 7종과 ‘세계사 ’교과서 7종을 분석한 결과,대부분의 교과서가 고대 한·일 관계사의 주요 쟁점인 ‘임나일본부설’(고대 일본이 한반도 동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 역 사학계의 주장)을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 리화하기 위해 국호인 ‘조선’을 ‘이씨조선’으로 표현하는가 하면,우리 고대사의 상한선을 끌어내리고,종군위안부에 대한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호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한·일 교육장관 회담은 오랫동안 우리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이 문제 를 시정하는 일에 1차적 관심을 보였어야 했다.그런데 우리 교육부는 이 문 제를 ‘공식의제’에서 빼자는 일본측 주장을 순순히 들어 주었다.그리고는 고작 만찬사등에서 언급하며 ‘기타의제’로 취급했다.만찬사에서의 우리측 언급내용 “역사교과서 문제는 한꺼번에 모두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주 만나 점진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도 이상하다.우리 측이 문제해결을 정면으로 요구하고 일본측이 그런 말로 슬쩍 피해 나갔다면 몰라도….교육은 한 나라의 정체성을 좌우한다.한·일 두나라 교육장관의 만남은 경제부처 장관들의 만남과는 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 교육 부는 간과한 듯 싶다.

나카소네 일본 문부상은 이번 회담에서 지난 1998년 한·일 정상회담의 공 동선언 내용을 다시 언급했다.즉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이해와 신뢰 를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양국 국민,특히 젊은 세대 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분을…따라서 자신 은 “한·일 교류사에 대해 차세대를 짊어질 청소년에게 객관적으로 가르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까지 말했다.그렇다면 한·일 정상회담 의 정신에 따라 두나라 교육장관 회담에서는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해결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었을까.“과거 한때의 불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참으로 두루뭉실한 외교적 언사로 넘 어가는 대신에.

이번 회담은 선진8개국(G8)교육장관회담,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교육회 의등 잇따라 열리는 교육분야 국제회의를 앞두고 아시아 대표국가로서의 위 상을 세우려는 일본측 계산에 따라 이루어졌고,알맹이 빠진 회담을 통해 실 리를 챙긴 것은 일본측이고 우리는 역사의식도 없이 들러리만 선 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두나라 교육장관은 이런 여론을 겸허히 받아 들여 다음 회담에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과거 청산 없는 미래는 모래위의 집 처럼 쓰러지기 쉽다.

---------------------------- 임영숙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