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妄言

대한매일 사옥이기도 한 프레스센터에는 일본인들이 비교적 많이 드나든다. 이 건물에 일본회사나 관련 단체들이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일본인들에게서 요즘 재미있는 변화를 느낀다.옆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말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진것이다.불과 몇해전까지만 해도 엘 리베이터에서 말하는 일본인은 보기 힘들었다.때로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눈총을 주고 싶을때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한 결과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끄러운 사람들에 대한 불쾌감을 참는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파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가 또 망언 (妄言)을 내뱉었다.9일 도쿄도 육상자위대 1사단 창설 기념식에 참석해 “산 고쿠진(三國人),외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어 큰 재해 발생때는 소요사건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산고쿠진’이란 일제때의 재일 조선인과 대만인을 지칭하는 말로 이들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의식과 경멸감 을 내포한 말이다.이시하라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선동에 일본 군 대와 경찰,주민 자경단 등이 조선인 6,000여명(일본 당국 공식집계)을 학살 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시하라의 좌충우돌 언행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지난 80년대 부 터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시리즈로 내면서 일본의 평화 헌법을 수정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해 온 그는 일 본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내다 팔면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미국을 협박하기도 하고,난징(南京)대학살은 중국인이 조작해 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지난달 일본 정부가 북한과의 수교일정을 발표했을때는 “북한 따위가 허튼짓을 시작하면 한방에 괴멸시키겠다”고도 했다.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독일의 한 시인이 “이제 시는 죽었다”며 절필 을 선언한 것이나 80년 광주의 참극에 많은 한국 작가들이 이 독일 시인을 떠 올리며 괴로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시하라가 대학시절 소설 ‘태양의 계 절’로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은 작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인의 정치적 나이를 12세 정도로 보았던 것처럼 이시하라를 미성숙한 정치가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망언을 통해 정치가로서의 그의 대중적 입지가 더 욱 탄탄해 질 것임을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돼 온 일본 극우파의 망언 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번 경우는 간토 대학살과 같은 참극을 다시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모골이 송연해 진다. 당분간 프레 스센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일본인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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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숙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