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표 관객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공연 가운데 라울 소사 피아노 독주회(98년 예술의전 당)가 있다.우연한 사고로 오른손을 못쓰게 돼 왼손으로만 연주하지만,두 손 가진 사람이 무색한 연주로 “황금의 왼손”이라 불리는 소사의 연주도 감동 적이었고 연주회장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속에 서도 초대권을 발행하지 않은 고집센(?) 공연기획자가 피아노 연주회의 상석 (上席)인 왼쪽에 우선 청중들을 앉힌 결과,오른쪽 객석은 텅빈 상태로 연주 가 진행된 것이다.일선기자 시절 공연예술 분야를 취재하면서 수많은 공연을 접했고 지금도 가끔 공연장을 찾지만 그 연주회처럼 연주자와 청중이 진지한 교감을 이룬 경우는 드물다.

초대권 관객이 많을수록 그 공연은 어수선하다.공연장의 기본적 매너도 지 킬 줄 모르는 관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그럴 경우 무대 위 공연이 아무리 좋아도 객석의 감동은 줄어들기 마련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연예술 계에서 초대권은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초대권은 여러가지 성 격을 띠는데 우선 주최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객(청중·VIP)을 초대하 는 데 쓰인다. 연주자나 공연단체,또는 공연작품이 유명할 경우 초대권 구하 기 경쟁이 벌어진다.이때 초대권 소지자는 특권층처럼 여겨져 웃지못할 온갖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작 초대관객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선기자 시절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유명공연을 취재할 때 VIP석을 찾아 가면 거의 끝까지 앉아 볼 수 있었다.

관객이 적을 것이 미리 예상되는 경우 썰렁한 객석을 채우기 위해 뿌리는 초대권도 많다.사실 우리 공연예술계에서 발행하는 초대권은 VIP를 위한 것 보다 이 종류가 더 많다.이 초대권 가운데는 개런티 대신 출연자들에게 나누 어주는 것도 있고,대학 교수 임용과 평가 기준이 되는 공연실적을 올리기 위 한 ‘전석 초대’공연의 초대권도 있다.심지어는 공연을 알리기 위한 전단처 럼 초대권을 뿌리고 공연팸플릿을 강매하는 경우도 있다.

공연 주최측이 기업 협찬을 받으면 협찬금의 30% 이상을 티켓으로 협찬사에 돌려주는 관행도 있는데 협찬사는 이 티켓을 초대권으로 뿌린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명성황후’의 초대권을 요구하는 고위공 직자가 많아 공연기획측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다.초대권을 받고도 공연장 에 나타나지 않는 VIP보다 그들을 더 문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아니다. 세간의 화제가 된 공연을 공짜로 보고자 하는 특권층 의식의 발로일 뿐이다.

우리 문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초대권 문제에 고위공직자까지 한몫 끼어든 모습은 추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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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