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엔날레

독일 중부 소도시 카셀에서 4∼5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미술제 ‘카셀 도 큐멘타’를 지난 92년 처음 접했을때의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현대 미술의 여러 경향을 부각시키면서 앞으로의 흐름을 예견하는 전시내용이 놀 라웠고 인구 20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 유럽은 물론 전세계 미술애호가 5 0만명이 관람객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나치독일의 이미지에 서 벗어나지 못한채 문화적 변방에 위치한 독일을 국제미술의 중심으로 만들 겠다며 1955년 이 미술제를 시작한 카셀 출신의 화가 아놀드 보데가 존경스 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3년후인 95년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됐을 때 당연히 카셀 도큐멘타를 다시 기억하며 그 성공을 기원했다.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우리 문화의식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 다.예향(藝鄕) 광주 시민들의 남다른 결속력과 전국민의 기대속에 제1회 광 주비엔날레는 대성공을 거두었다.카셀 도큐멘타의 3배가 넘는 160만명의 관 객을 동원한 것이다.제2회 때는 90만명을 동원했으나 전시내용 면에서 질적 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99년 현재 광주시민이 130여만명인 점을 감 안하면 카셀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고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유럽과 한 국의 현대미술 전통이 다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공인 셈이다.

29일 개막한 제3회 광주비엔날레가 어떤 평가를 받고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그러나 광주비엔날레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하다.‘인(人)+간(間)’을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에는 세계 4 0여개국 240여명의 작가가 본전시에 참여했다.특히 올해는 5·18 민주화 항 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예술과 인권’전이 마련돼 눈길을 끈다.이 특별전의 큐레이터와 본전시회의 아시아 미술을 총괄하는 커미셔너를 일본인 이 처음 맡은 것도 주목된다.광주비엔날레가 광주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딛고 다양성과 개방성을 더욱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겠기 때 문이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가 광주비엔날레에 후원금 4만달러(약 4,400 만원)를 낸 사실도 흥미롭다.미국이 오랫동안 전세계의 문화행사,특히 미국 예술가가 참여한 행사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왔다지만 한국의 문화행사에 이 처럼 많은 돈을 내놓기는 처음이다.광주 비엔날레의 명성이 미국에 알려져 국무성 산하 교육국(E Bureau)에서 먼저 후원금 기부를 제안했다는 것이 미 국측 설명이다.한국의 반미감정이 광주 5·18 민주화항쟁 때부터 심화됐다는 사실을 떠 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광주비엔날레의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 싶다.제3회 광주비엔날레는 개막에 앞서 총감독 해임,한국관 작가 불참 선언 등 내부적 갈등을 심각하게 겪었다.그런 갈등마저 발전적 밑거름 으로 전환시킨다면 광주비엔날레의 진정한 성공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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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