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逆說)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 네번째 막을 올린다.전국적으로 수많은 축제,엑스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열리지만 부산영화제만큼 순항하는 잔치는 별로 없다.이유가 무엇일까.

성격상 영화부터 얘기해야 하지만 그건 영화전문가와 관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대신 비영화적 차원의 성공 요인을 주목하면 또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이를 더욱 쉽게 파악하려면 부산영화제를 실패로 내모는 역설적 길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 되리라 본다.

부산영화제의 오늘 뒤에는 한국적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이 깔려 있다.이것들을 제거하면 이 영화제를 간단히 좌초 또는 침몰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요소의 첫째는 위아래가 없는 것이다.우리나라의 대부분 행사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거나 자율을 입에 바르고 다니는 문화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장 어디를 가나 일사불란과 상명하달이 주축을 이룬다.

부산영화제는 이런 한국적 관행을 외면하고 지극히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출발했다.부산을 중심으로 한 젊은 몇몇 영화 학자,평론가들이 영화제 창설을 서둘렀다.유력한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개인들이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볼 때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집행위원장을 구하는 방법은 한술 더 떴다.여러 경로를 통해 적임자를 찾았다.그렇게 해서 취합하니 현 김동호 위원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그러나 이들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렇게 출범했기에 이 조직의 운영은 위아래가 없이 수평적이다.독선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의견이 다르면 사무실,술집을 가리지 않고 만나 몇날 며칠이라도 조율한다.

둘째,부산영화제는 잘난 체하지 않는다.이 정도 됐으면 요란할 법도 한데 지극히 평범한 태도로 일관한다.그건 누구 때문에 성공했는가를 정확하게 안다는 뜻이다.이 영화제의 최대 백은 자발적 관객이다.다른 행사나 축제는 행정기관,교육기관을 통해 관객동원을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시장논리에 그대로 맡기고 관객이 외면하면 망하고 만다는 인식이 철저하다.영화인과 관객이 이 축제의 주인이란 점을 실현시키고 체감하게 해준다.

그래서 부산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편안함을 느낀다.택배회사 사원이 배달왔다가 사무실 앞에서 영화제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을 정도로 그들은 나서지 않고,위원장 방을 찾은 방문객은 사무실 구석의 빈 책상이 위원장 자리라는 설명에 어리둥절한다. 뜨내기들의 합숙소를 방불케 한다.뭐 하나 하면 번쩍번쩍하는 간판과 호화집기,무턱대고 넓은 집무실부터 챙기는 한국적 풍토와 너무 동떨어진다.

아울러 영화제에 와서 잘난 만큼 우대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거부한다.영화를 보고 즐기도록하는 것이 목적이지 다른 데 뜻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영화인과 관객들이 바닷가나 길거리의 포장마차에 퍼져 앉아 술을 마시며 영화얘기로 밤을 지새우는 걸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자발적 잔치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셋째,비영화적인 것은 최대한 배제한다.재력가나 정치가 또는 고위공직자 등의 개입을 이 영화제는 가능한 한 멀리 한다.다른 행사들이 그런 사람을 열심히 모시고 그를 영광으로 자랑하는 것과 다르다.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영화제에 온 각당의 후보들이 공식적으로 관객과 만나려던 것을 막은 것이 좋은 예다.

넷째,변명하지 않는다.일을 하는데 미흡한 점과 문제가 왜 없겠는가.이럴 때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개선을 약속한다.다른 행사에서 이런 것을 놓고 주최측과 기자들이 흔히 비우호적 관계로 되는 것과 다르다.

다섯째,부산시민들의 그릇이다.영화제의 사실상 선장인 집행위원장은 부산사람이 아니다.이에 대해 전혀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위원장의 태도와 일솜씨를 보고 선선히 인정하며 받아들였다.이 역시 우리 사회의 인습상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놓고 운이 좋다고 평하는 사람들을 만난다.그러나 이같이 비한국적이며 ‘말도 안되는’ 요소들이 없이 운만으로 가능했는지 묻고 싶다.각 분야의 많은 단체와 조직의 운영자들은 자체내에 부산영화제의 ‘말도 안 되는’ 요소가 얼마나 있는지 점검하여 성공과 실패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박연호 논설위원 (국민일보)
1999년 10월 12일 17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