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28세 김자경


많은 세계인들이 상대성원리를 모르면서도 아인슈타인은 잘 알듯이 한국인들도 평생 오페라 한편 관람한 경험이 없는 이들까지 김자경을 안다.그만큼 그는 한국 오페라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태웠다.

성은 오요 이름은 페라라는 남자와 재혼한 영원한 28세라고 농담같이 주장하면서도 실제는 더 젊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다 갔다.여성이 활동하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어려운 오페라에 한평생을 바쳤기에 그 광채는 더욱 빛난다.

한국에서 문화예술을 본업 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그 중에서도 문학,미술과 달리 음악,무용,연극,오페라 등 공연예술은 더더욱 가시밭길이다.기획,출연,입장권 판매까지 1인 다역을 해도 항시 허덕이는 상식적 고충부터 경제적 어려움까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의 종합이라 할 오페라는 명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우선 물량면에서 대규모다.생전에 김자경씨도 토로했듯이 오페라 한 편에 출연자,오케스트라,스태프 등 수백명의 인원이 동원된다.이에 따르는 비용,처리해야 할 일이 간단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것이다.

또 오페라 자체가 한국에서 대중화하기에 걸림돌이 많다.가창력이 뛰어난 성악가가 출연자의 제일차적 조건이지만 연기력도 이에 못지 않아야 한다.그러나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이를 다 갖춘 연기자를 확보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오페라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와 프랑스어 대사가 많아 일반인들은 유명한 아리아 몇 곡 듣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우리 말로 번역해서 불러도 관객의 감흥을 고조시키기가 쉽지 않다.연극,뮤지컬 등과는 사뭇 다른 이런 점들이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그 태생적 한계는 여전히 대중화의 장애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아직까지도 오페라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이다.이 척박한 땅에서 오페라단을 창설,30년이 넘도록 개인의 힘으로 끌어 온 것은 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음악계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가 두고 두고 기억할 발자취를 남기고 간 것이다.

평소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현역에서 활동해야 한다”던 주장대로 그는 오페라에 살다가 오페라에서 죽었다.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작품 ‘춘희’에 출연하고 김자경오페라단 창단 첫 작품도 이것으로 공연하더니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도 지난 8월의 ‘춘희’였다.‘영원한 춘희’라는 애칭에 걸맞은 생애를 살았다.이를 밑거름 삼아 그의 평생 소원인 한국오페라 발전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1999.11.1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 제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