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민주주의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는 현재 스위스 등 일부 지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사실상 그 기능을 간접민주주의 요체인 대의정치에 넘긴 지 오래 되었다.주민의 의견을 일일이 들어 정치하기는 너무 번거로우므로,대의정치제도가 좋은 대안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어떤 새로운 방식도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인류는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 등장에 따른 전자민주주의(teledemocracy)가 이 고정관념을 뿌리째 흔들며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던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되살리고 있다.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을 결정하는 데 주민 대표인 의원이 아니라 주민들 자신이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의사를 직접 개진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96년 대통령선거 당시 인터넷을 통한 가상투표를 실시,기술적 미비점,한 사람의 중복투표,임의조작 가능성,생소함과 낯섦에 따르는 문제들을 점검했다.그리고 이런 점들을 보완,2000년 선거에서는 일부 지역이 투표소를 설치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투표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또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조직 업무는 물론 대국민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전자정부 구축에 발벗고 나섰다.

호주도 온라인 행정서비스를 다각도로 추진,전자정부 구축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비롯,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이를 위해 애쓰고 있다.우리나라의 김대중 정권도 전자매체를 이용한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다.지난해 8월25일부터 27일까지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제1회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는 이런 것들을 종합,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과 강화가 단순한 꿈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제시했다.

최근 강원도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가 자치단체의 효율적,합리적인 예산편성을 위해 주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백번 찬성하고 남을 일이다.그 주장대로 주요 투자사업의 우선 순위를 주민들이 정해야 한다.주민들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하며 그 집행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민들의 눈엣가시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현행 의회제도 및 민주주의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전자민주주의로 가는 필수과정이기도 하다.이는 대의민주제에서 드는 엄청난 비용뿐 아니라 여러가지 시간,공간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원주시에만 그칠 게 아니라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도록 시민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박연호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국민일보 199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