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서, 허침도 손들 교실

최근 울산,경북 예천,서울 강남 등지의 초.중등 학부모들이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며 회초리를 전달하거나 그럴 계획을 세웠다.교실붕괴,교육파괴 등 소름끼치는 소리가 끊일 날이 없는 학교위기를 타개해보자는 의지의 일면이라 하겠다.그러나 회초리의 상징성이 가볍지는 않지만 바위에 부딪치는 달걀같은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비웃듯 바로 그 무렵 경기도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생 11명이 점심시간에 학교를 빠져나가 교사한테 폭행당했다고 신고했다.미술시간에 어린이들이 소란을 피우자 교사가 잣대로 한 대씩 때린 것이 그렇게 되었다.그 교사는 사표를 제출하고 교단을 떠났다.

한 고교 교사는 이를 두고 편작이 열이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듯이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조지서(趙之瑞.1454∼1504)와 허침(許琛.1444∼1505)이 와도 현 상태의 교육은 포기할 것이라고 장담했다.그 정도로 우리 교육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조지서,허침은 같은 학생의 교육을 위해 참다운 스승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 방법에서 대조를 이루었다.그러나 그들이 감내한 고통과 인내는 질적으로 같았다.

연산군이 누군가.그가 앞날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행은 숱하게 많았다.오죽하면 아버지인 성종시절 가장 총애를 받던 손순효(孫舜孝.1427∼1497)가 어느 날 무엄하게도 용상 가까이 다가가 한 모서리를 짚으며 한탄했을까.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이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행동이었다.다른 신하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사형해야 한다고.

그러나 성종이 이를 변명했다.다름 아니라 내가 술과 여색이 과하니 자제하라는 진언을 했다고 둘러댄 것이다.사실은 그게 아니었다.세자(연산군)가 다음 왕위를 차지할 감이 되지 못하니 이 자리(용상)가 아깝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이는 반역죄로 당장 능지처참해야 마땅한 언사였다.

조지서와 허침이 이런 연산군의 교육을 맡았으니 그야말로 칼날 위에 앉은 새와 다를 바 없었다.세자의 교육기관인 시강원에서 교육을 담당한 사람을 서연관이라 했는데 시쳇말로 실세의 스승이라 정치적 힘을 과시하기도 하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영향력이 막강해지기도 했다.그래서 스승이라 해도 서연관들은 여간 조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서는 달랐다.날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사냥,놀이나 일삼는 연산군을 성심껏 지도하고 타이르다 듣지 않을 때에는 책을 집어던지며 호되게 꾸중했다.지금 세상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을 그는 주저없이 한 것이다.그러니 연산군이 좋아할 리 없었다.반면 허침은 화가 나도 참으며 부드러운 말로 깨우쳐 주었다.

이에 연산군이 하루는 요새로 치면 대자보를 붙였다.“조모는 소인이고 허침은 성인이다”라고.사람들이 이를 보고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조지서가 기필코 죽을 것이라며 떨었다.나중에 조지서는 시골로 내려가 살다가 갑자사화 때 연산군에 의해 처형됐다.허침은 그 정도 참사는 당하지 않았으나 역시 폭군을 길러냈다는 자책감에서 말년에 툭하면 피를 토해내다 죽었다.둘 다 참된 스승의 길을 걸었으나 잘못된 제자 때문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렇게 참된 스승들이 와도 오늘의 교육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학교현장의 분위기이고 보면 걱정스럽다 못해 참담하다.연산군만 틀린 것도 아니었다.그도 왕세자 교육과정에 할 말이 있었다.그러나 당시 그걸 바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우월한 세자직을 남용해 스승들을 괴롭힌 것이다.스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런 교육제도 개선은 꿈도 꿀 수 없고 버릇없는 세자스승 자리를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어 죽음의 길이 뻔히 보이지만 감수한 것이다.

“연산군은 비행학생이었어도 어디로 갈지 그 방향이 보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이나 가지요.그러나 지금 애들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해요.나중은 고사하고 현장에서 별 일이 다 생기는 걸요” 이런 판국에 새 천년이 온들 뭐하며 21세기가 시작된들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아직도 용기를 잃지 않는 교사들이 많다.단 그들의 요구가 있다.당시와 달라 정부,사회,학부모,학교가 진정한 자세로 새로운 교육의 틀을 짜고 학생들과 시대가 요구하는 내용을 가르치면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니 그래야만 한다.그렇지 않으면 학교는 붕괴될 뿐 아니라 복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학생은 학교와 교사가 싫고,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 이전에 악이 바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1999.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