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 이혼 10여년 전 일본에서 일기 시작한 황혼이혼 바람이 우리 사회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98년 현재 전체 이혼상담의 10%가 황혼이혼 관계라는 통계가 이를 실감케 한다.일본의 경우는 16%나 되며 그 가운데 80%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내차는 것이며,20%는 반대로 남편이 부인과 살지 못하겠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가정,가족 우선이라는 가치관에 의해 부당해도 참고,억울해도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알던 두 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새로이 눈뜨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지금까지는 가정이라는 틀에 매달려 인생을 허송하고 불행해져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던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여성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굴종이 미덕이고 희생이 의무였다.반세기 전에는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대우조차 불온한 처사로 여길 정도였다.산업사회가 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다소 개선됐지만 극히 일부분이고,여성 전반의 권익은 농경시대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임금노동자가 된 남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지면서 여기에서 발생한 파장은 가정과 주부의 희생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구조적 요인과 남존여비의 인습이 고질화하면서 발생한 모순을 해결하는 데 부부가 함께 노력하면 그런대로 위로가 될텐데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짓누르는 하중은 거의 다 아내 몫이 되어버렸다.여기에 외도,폭력,의처증 등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더하면 그건 지옥이다. 70대 할머니가 80대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그러나 대법원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고령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남편을 돌보아야 한다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최근 급증하는 황혼이혼 및 가족해체 현상에 경종을 울리자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한평생을 온갖 고통 속에 살아온 그 할머니의 인생은 끝내 현 가족제도와 그 의식구조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가.얼마 남지 않은 노후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려는 요구는 그렇게 작은 것인가.한국여성의 전화 연합 등 8개 시민단체가 발표한 성명이 그 답이 될 것이다.이들은 황혼이혼 청구를 기각한 것은 여성인권에 대한 억압적 처사이며,기득권을 거머쥔 가부장적 남성집단의 입장만 대변한 몰상식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도 할머니의 행복추구권을 일축해버린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다.남녀 편가르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법이건 사람이건 결혼제도를 고정시켜 보지 말고 인간의 자기실현에 방해는 물론 고통까지 안겨주면 바로 바꿀 수 있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행복과 인간의 도리는 결혼,가정 밖에서도 실현될 수 있으니까.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