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영화 전용관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으로 36년간의 독재정치 막을 내린 스페인의 최대 정치적 과제는 민주화였다.그러나 정변을 겪고 난 뒤 민주화에 실패한 나라들이 이전에 많았던 터라 해외에서는 비관적 견해도 적지 않았다.그렇지만 스페인은 78년 신헌법을 통과시키고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또 다른 나라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흥미있는 변화를 이룬 부문이 있다.포르노극장의 자유화다.프랑코의 독재정치는 국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을 억압하고 감시했다.포르노극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자유화,민주화의 물결이 밀려오자 이의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하지만 찬반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허용됐고 큰 문제없이 정착했다.이에 대한 분석은 여러가지였지만 민주화를 단기간내에 이룩한 스페인 국민의 성숙도 때문이라는 주장이 꽤나 많았다.그렇게 높은 수준이기에 성인영화관도 무리없이 소화시켰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민주화와 포르노극장 자유화의 연관성이 얼마나 긴밀한 건지 분명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일반국민의 의식수준이라는 테두리에서 살펴보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듯했다.우리나라를 거기에 비추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성인영화전용관이 곧 포르노극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성과 폭력묘사가 지나쳐 일반극장에서 상영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상영하는 특정극장이다.그러나 아무래도 포르노가 대종을 이룰 공산이 크기에 우리 사회도 이를 놓고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밑바닥을 보면 우리 국민과 사회의 성숙도에 대한 의문이 깔려 있다.성인들은 성인들대로 퇴폐에 빠져들고,미성년자들은 금지시켜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다는 우려다.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포르노극장,섹스숍,공창(公娼)이 없으면서도 한국은 섹스천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성을 국제적으로 얻고 있다.청소년들 역시 아무리 법으로 금지해도 유흥업소와 불건전한 영상물 등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또 막기만 하다 보니 지하로 뻗어나가 통제권을 이탈하고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런 것들을 특정지역에 허용하여 독버섯처럼 번지는 증상을 막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그런 점에서 정부가 내년 6월부터 성인영화전용관 설립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적극적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통행금지를 없애고 중·고교생 두발과 교복을 자유화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우려와 반대가 많았던가.그러나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소화하고 정착시켰다.스페인보다 늦었지만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여기서 우리 수준을 가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무조건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1999.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