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한 고비 넘겼지만

컴퓨터의 2000년 인식오류문제(Y2K)가 큰 사고 없이 새해 첫날을 넘겼다.가장 먼저 새해를 맞은 뉴질랜드에서부터 마지막 지역인 남북미의 서부지방까지 순조롭게 넘어감으로써 우려하던 큰 재난은 발생하지 않았다.다행이다.

이를 두고 기우였느니, 인간의 지혜가 잘 막아냈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어느 쪽이 옳다고 손들어줄 상황은 아닌 것 같다.Y2K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까지 투입한 비용이 세계적으로 약 1조달러(약 1천2백조원)에 달하고 연말연시 비상경계에 동원된 인원도 나라마다 몇십만명에서 수백만명에 이른다.우리나라만 해도 40만명이 비상경계근무를 하고 있다.이런 노력 없이도 그처럼 무사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엔,미국,영국 등에서도 아직 안심은 이르다며 경계태세를 늦추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1,2일에 발생하는 Y2K가 전체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세계 각국이 연휴라서 업무를 쉰데다 미봉책으로 넘긴 곳들이 적지 않아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2월29일도 안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각 직장이 첫 출근하는 3일,금융계 업무가 재개되는 4일을 주의해야 한다.이때 모든 컴퓨터의 작동이 한꺼번에 시작되기 때문이다.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교도소의 컴퓨터 연도를 2000년과 요일이 같은 1994년으로 돌려 놓았고,터키는 이라크에서 오는 송유관 모니터시스템을 1995년으로 후퇴시켰다.우선 위기를 넘기고 다음에 차분히 고치겠다는 미봉책이다.

또 Y2K가 천천히 발생하는 일도 많아 몇달 심지어는 몇년을 두고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더구나 올해는 태양활동이 11년만의 극대기로 접어 들어 지자기 폭풍,즉 태양풍이 강력하게 발생한다.이는 인공위성은 물론 지상의 대형 송전설비,정밀 전자기기에 치명타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이것이 Y2K와 결합하면 결과는 예측불허다.

따라서 큰 고비를 넘겼다고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다.차분히 대응하면서 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큰 사고는 없었다고 하지만 경기도 평촌 아파트의 난방장치,안산의 병원 의료기기,경북 칠곡의 유선방송,대구 부산 광주 수원 등의 책,비디오 대여점 Y2K 발생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전체적으로 보면 경미한 것 같지만 당사자들이 당한 고통,비용손실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은 인류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지만 오용하면 핵무기처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컴퓨터도 부작용이 이로운 점 못지않게 많다.이번 Y2K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지혜를 시험하며, 성숙하게 해주는 좋은 계기도 될 것 같다.물론 잘 넘긴 다음의 일이지만.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국민일보 2000년 0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