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시험은 지속되어야
8년전 6월 파리를 출발하여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대학교 교수 두 사람을 만났 다. 그들은 파리에서 상당 기간 프랑스의 논술시험제도에 대한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돌아 간다는 것이었다. 서울대학측이 공식적으로 이들을 보낸 것인만큼 얼마 안 있어 입학시험에 반영하리라는 것은 굳이 묻지 않아도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기자임에도 그걸 보도하지 않았다. 직업보다도 우리가 선후배임을 강조하며 귀띔해 준 아는 분과의 인간관계를 그렇게 해서 훼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 다도 논술시험의 정착이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소신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 던 터라 이제 막 준비 단계에서 보도함으로써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예상했던대로 서울대에서 논술시험을 도입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고 등학교와 수험생은 물론 초등학교까지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글짓기와 논술의 차이를 몰 라 학생, 학부모들이 당황했고 심지어는 일부 교사들까지 어떻게 대응할지 난감해 했다. 암기식으로 교과서 내용 주입에 급급했던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교육 현장부터 개선되지 않으면 논술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개혁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각적인 것과 점진적인 것이다. 서울대 논술시 험 실시는 즉각적인 것에 가까웠다. 제대로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실시하고 학급정원도 최소 한 20명선으로 줄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논술시험에는 주어진 범위내에서 서술한 내용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 개인의 문장 력, 독서력, 교과목 이해, 창의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와 교사들의 지도방침, 교육철학, 교 육여건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중.고교생 나아가 대학생들이 써놓은 대부분의 논술을 뜯어보면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논술의 첫째 요건은 정확한 문장과 표현이다. 학교에서 실시한 그 동안의 어문교육 성과가 여기에 집약된다. 그러나 학생들의 논술문을 보면 어문교육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금 방 알 수 있다. 문장기초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짧은 글짓기 연습도 학교에서 전혀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또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비문, 악문을 예사로 만든다. 평소 어문교육시간에 논리적인 글에 대한 훈련을 소홀히 한 때문이 다. 낱말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예컨대 연결사나 지시사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 문장을 이어 가는데 그처럼 서투를 리가 없다. 철자법, 띄어쓰기도 대부분 수준이하 다. 또 국어시간에 흔히 시, 수필 그것도 문학에 적성이 있다는 학생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 탓에 글 좀 쓴다는 학생들도 논술의 본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학작품이라고 논리가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논술은 특히 논리가 생명이다. 그러나 논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횡설수설이 되고 만 글이 많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정확한 글 쓰기에 관한 책들이 많다. 그것도 상업적인 차원 에서 내는 것보다 대학 출판사 등에서 중.고교생들을 위해 출간하고 지도하는 것이다.우리는 논술시험제도가 발표되고 나서 이런 종류의 책이 있나 샅샅이 찾아 봤지만 대학생 레포트, 논문작성법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런 것들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없다 해도 크게 아쉬울 정도는 아니었다.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하니 논리학 책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학교교육에서 단계적으로 해야 성과가 있지 대학생들도 어려운 교재를 조금씩 바꿔 벼락치기로 내놓으니 혼란만 가중되었다. 이 역시 초중고교 교과과정에서 이를 정식으로 다 루지 않은 때문이다. 정확한 어문규칙에 따른 문장, 바른 철자법과 띄어쓰기, 내용을 이끌어 가는 논리는 논술문 의 집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교과내용을 비롯한 많은 지식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설 득력, 창의력이 반영된 필자의 주장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건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논술과외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래도 필요하다면 논술문을 위한 문장작법, 논 리전개, 정확한 어법의 지도와 훈련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넣을 내용은 과외로 될 수 없다. 결국은 본인의 독서량에서 판가름이 나는데 보통학생은 물론이 고 우등생이라는 학생들의 독서량도 대부분 빈곤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과외학원이라고 하 지만 이를 어떻게 대신 메워주고 머리 속에 축적시켜 줄 것인가. 마침 수능시험도 통합교과형으로 출제한다고 발표해 논술과 보조를 이룰 수 있었다. 통합 교과는 예를 들어 지리 문제 속에서 경제적, 역사적 측면을 고려하고 가늠하는 식이고 같은 방법으로 물리 문제 속에서도 문화, 철학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종합적인 사고력 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논술공부에도 필수적인 것이어서 단적으로 말하면 수 능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육현장은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리, 경제, 역사를 동시에 다룰 교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교과별로 교사가 정해진 현 제도상 여러 가지 어려움 이 따랐다. 그보다 학교에서 배우기는 각각이지만 학생이 이를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응용하 도록 하자는 것이 본 의도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아 학교, 학생이 모두 손을 들다시피 했다. 논술도 사정은 비슷했다. 문장의 틀에서부터 내용까지 지도하고 토의하려면 학급당 40명 가까운 현재 실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건 성격상 1대 1이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각 학교 는 이를 포기하고 사설학원에 맡겼다. 사설학원으로 몰린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런 과정을 밟으려 하기 보다 있을 수도 없는 모범 답안을 요구했다. 지적수준과 창의력, 사고력을 측정하는 논술에 무슨 모범답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상업주의 학원들은 마치 있는 것처럼 교육을 하고 수험생들은 이에 만족 했다. 문제의 지문만 비슷해도 가르친 문제가 출제됐다며 정확도 몇 %를 자랑하고 그 강사 한테는 수강생이 쇄도하는 웃지못할 사태도 벌어졌다. 결과 각 대학의 논술시험 답안은 무 슨 문제가 됐건 비슷한 답안이 나왔다. 몇 가지를 외어두었다가 어거지로 꿰어 맞춘 것이다. 개혁에 가까운 갑작스러운 실시가 불러온 혼란이었다. 그러나 이건 차츰 정상궤도로 진입 하리라는 현상이 여러 가지 나타났다. 대학입시가 이렇게 바뀌자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 서까지 문장교육과 독서지도를 강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초등학생들 아니 중학생들이 대학을 갈 때만 되어도 상당히 정착하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논술이 본격적으로 입시에 도입되기 이전에 국어시험 중 글짓기 항목이 있었다. 이것만 해 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 그건 취직시험을 치르는 대학졸업생들의 논문시험에서 여실히 드 러났다. 글짓기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세대의 글이 그 전 선배들보다 훨씬 나았다. 대학교수 들도 글짓기 시험세대의 레포트나 논문은 물론이고 사고력, 창의력에서도 앞선다고 지적했 다. 단순한 글짓기가 이런 효과를 가져 오니 논술은 어느 정도일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 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합교과형 수능시험과 논술은 또 다른 과외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고 바뀌거나 축소되었다. 지속적으로 밀고 나갔으면 우리의 초등, 중등 교육내용은 상당히 달라졌을텐데 반대로 급속히 후퇴하고 말았다. 책방에 하루가 다르게 쌓이던 논술, 문장, 독 서 관련 서적들도 곧 퇴출되었다. 우리 사회의 냄비근성이 어김없이 드러난 것이다. 논술은 가장 먼저 도입했던 서울대도 그 비중을 2% ~ 4%로 축소해버렸다. 그래도 그 범 위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논술명맥이 아주 끊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대학들 중에서도 논술의 중요성을 포기할 수 없어 10%까지 배정한 학교도 있다. 이처럼 도입되자마자 위기에 몰린 논술이 이제는 아예 퇴출될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서울 대가 2002년도 입시부터 논술을 폐지하고 그에 못지 않도록 면접과 구술을 강화하겠다고 밝 힌 것이다. 이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그러나 면접과 구술만 가지고 논술에서 측정할 수 있는 학생의 여러 가지 자질을 깊이 파악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이 논술과 서로 보완관계를 이룬다면 그 상승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는 논술을 제외했다. 8년 전에 교수 두분을 파리로 보내 바칼로리아를 검토하게 했던 서울대가 10년도 되지 않 아 입시방침을 그렇게 바꾸어 버린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가 각급학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논술 아닌 일반적인 글도 우리 사회의 평균수준은 매우 낮다. 거리에 붙은 안내문에서부터 관공서의 고지서에 이르기까지 맞춤법, 띄어쓰기, 적절한 용어 선택 등에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신문, 잡지, 방송 등 언론이 이를 부추긴 점도 적지 않다. 심지어 논술이 본업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의 글 가운데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비문, 악문이 적지 않다. 명문대학의 이름난 교수로 어문학 전공인 어느 문학평 론가의 글은 한 문장이 원고지 몇 장이나 돼 어지러운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초문법에도 어 긋난 문장이 예사로 나온다. 또 우리 한국인들은 대부분 생각이 단편적이고 편협하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리다는 식으로 사고방식이 굳어져 있다.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종합적으로 사 고하고 분석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비생산적 시 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논술시험은 장기적으로 이상의 결점들을 개선하는 좋은 제도라 할 수 있다. 깊고 넓게 사 물을 이해하고,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입체적으로 파악하여 사려깊게 대응하고 해결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체질과 의식을 개혁할 치 료제라고도 할 만하다. 따라서 이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형식으로든지 살리는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dwitsan@hanmail.net 200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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