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얼굴 지하철

지난 1일 서울지하철 7호선 전구간이 개통된 데 이어 공사중인 6호선의 동쪽 일부 봉화산∼상월곡 구간이 7일 개통되었다.지하철 2기 공사가 거의 마무리돼 1호선∼8호선 가운데 6호선을 제외한 모든 선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을 태워나르게 되었다.1974년 첫선을 보인 서울의 지하철이 26년 만에 대중교통의 총아로 떠오르며 서민생활의 중심무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일상 모습과 풍속도가 지하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갖가지 애환이 여기에 실려 전파되고 있다.지하철만 한 번 타면 시민질서의식 수준,세태변화 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젊은이들의 애정 표현이 아닌가 싶다.한 세대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과감하고 대담한 젊은이들이 이제는 예사가 되었다.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남녀 포옹은 기본이며 라틴 계통 나라 젊은이들처럼 정열적인 표현도 드물지 않다.

그래도 추하지 않은 것은 젊음이 가지는 자랑이요 특권이기 때문일 것이다.그 영향을 받은 때문인지 중년 남녀들도 가끔 젊은이들 못지않게 자신있는 애정 표현을 하며 더러는 밉지 않게 그런 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노인들까지 있다.

한 세대 전 부부라도 길에 나서면 몇 걸음 떨어져 걷고,군대 간 서방님이 돌아와도 반갑다는 내색을 못 하며 유행가 가사처럼 행주치마 입에 물고 웃는 듯 마는 듯 입만 뻥끗하고, 깜깜하고 무서운 물레방앗간에서 도둑처럼 접선하여 사랑을 나누던 이들의 후손이라면 누가 믿을까.

젊은이들의 지나친 애정 표현에 대한 중장년 이상의 반응은 대개 비슷비슷하다.그러려니 하고 수용하는 태세가 절반쯤 되고,나머지 절반 가운데서 대부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가끔 지하철이 너희들 집 안방이냐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

나무란다고 해서 순순히 고치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뭐라건 무시하고 계속 엉겨붙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을 도리어 주책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이런 젊은이들은 순진하고 착한 편이다.

언젠가 퇴근시간 무렵 5호선 광화문역에서 20대 젊은이가 60대로 보이는 어른과 드잡이하며 야단법석이었다.애정 표현을 나무라자 따라 내린 젊은 쌍이 도리어 가만두지 않겠다며 덤빈 것이다.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무슨 변을 당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누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듯이 물정 모르는 ‘천연기념물 세대’의 큰 실수고 잘못이었다.

나이 든 사람이 이같이 혼나는 일은 그외에도 많다.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왼쪽은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비워 두는 예절이 상당히 뿌리는 내렸다.그러나 아직도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여기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역시 어느 역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서서 가는 젊은이한테 좋은 말로 타이르던 어른이 아주 고약한 지경에 빠졌다.젊은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게 바쁜 사람들은 옆의 계단으로 다니면 되는데 왜 나서느냐고 종주먹을 댄 것이다.그렇게 나오자 너무 망신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나이 지긋한 초로의 신사는 도망치듯 사라졌다.그도 세태와 자신의 나이를 너무 몰랐다는 후회를 했을지 모른다.

에스컬레이터 예절을 지키지 않아 언쟁이 벌어질 때 공방은 똑같지 않다.나이든 사람이 지키지 않아 젊은이가 항의하고 반대로 어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반박하는 경우도 많다.기초질서의식이 철저하면 모두 편하고 쾌적하게 나다닐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않아 서로 힘들고 불쾌하게 되는 일이 이처럼 한둘이 아니다.

휴대전화 통화,큰 목소리로 얘기 나누는 것,비좁은 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것,타고 내릴 때 무질서,화장실을 불결하게 하는 것 등 꼴불견은 숱하다.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지하철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변화의 양상과 속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젊은이들한테 혼나는 어른들의 서글픈 모습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인천의 지하철 개통에 이어 광주 대전도 한창 공사 중이다.그야말로 대중교통의 왕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사회의 대표적 얼굴이요 새로운 거울이라 할 수 있다.이용자들은 너나없이 이 점에 유의하여 얼굴이 추하게 되는 것을 막도록 하자.해당 자치단체들도 이를 주목, 건전하고 품위 있는 지하철 생활문화 창조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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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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