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100년

"전기회사에서 작일(昨日)부터 종로에 전등 삼좌를 연하였더라." 이는 1900년 4월11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짤막한 기사로 우리나라에 가로등이 처음 등장한 역사적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서울 종로의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을 밝히기 위해 그렇게 가로등 3개를 설치한 지 10일로 꼭 100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기에너지를 이용한 가로등으로서는 처음인 것이다.그 이전에도 공공건물,사찰의 문밖 또는 처마에 매달거나 묘소의 석등에 밝힌 장명등(長明燈)이 없었던 건 아니다.석유나 양초를 이용한 장명등은 오늘날의 가로등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건물 밖을 밝게 해주는 점에서는 역할이 비슷했다.

가로등의 역사가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가는 것도 같은 논리다.당시 이집트는 집집마다 문앞에 등을 달도록 했고 로마시대 역시 대규모 목욕탕,번화가,광장 등에 등을 내걸었다.파리에서는 1524년 길가의 집들은 모두 등불을 내걸어 도둑이나 방화범을 막도록 했다.본격적인 가로등 형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각등(角燈)을 길거리에 세운 것은 1558년이었다.유럽의 각 도시들이 이를 모방,17세기에는 거의 모두 가로등을 설치했고,1807년부터 가스불이 가로등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로등은 어둠을 밝히고 도둑을 예방하는 기능에서 더 나아가 상업활동과 도시경관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백열등에 갓을 씌운 우리나라의 가로등도 1963년 수은등으로 바뀌었고 1982년 통행금지 해제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966년 4800여개이던 서울시내 가로등이 이제는 11만여개가 되었으며 밝기도 92년 이전의 7∼15룩스에서 15∼30룩스로 높아졌다.뿐만 아니라 강남구는 양재천변에 최첨단 가로등 286개를 설치했다.이 가로등들은 불이 켜지지 않거나 고장나면 구청 상황실 담당공무원을 자동호출한다.

전력을 공급하는 가로등 분전함 내부에 원격송수신 단말기를 내장했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100살을 맞으면서 그처럼 똑똑해지고 구실도 다양해진 것이다.그러나 ‘아름다운 밤의 도시’라는 찬사를 받은 프랑스의 리옹을 비롯해 파리,런던,암스테르담,뉴욕,마드리드,로마,시드니,홍콩,싱가포르 등이 가로등을 이용해 밤의 관광산업을 진흥시킨 것에 비하면 미흡한 점이 많다.

다른 나라들처럼 장기적인 조명계획을 세워 빛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가로등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또 멋과 낭만,정취가 흐르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시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관광객들까지 다시 찾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그런 점에서 가로등 역사를 다시 한 번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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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