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별들을 훔쳐갔나

스페인 천문학자들과 천체관측 동우회원 그리고 환경운동가들이 주도한 시위가 그나라 전체를 흔들었다.

그들이 내건 구호는 “누가 은하수를 훔쳤나”였다.어린이들의 꿈과 동화,동요를 위한 낭만적인 데모로 착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빛의 과잉이 만들어낸 공해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시위대에 따르면 대도시는 물론 시골의 작은 마을까지도 밤이 지나치게 밝아 에너지를 낭비할 뿐 아니라 야행성 동물의 짝짓기,새끼먹이 주기 등 본능을 해치고 하늘의 은하수,별빛을 죽인다는 것이다.마드리드,바르셀로나 같은 곳은 도시 전체가 야간경기를 하는 운동장처럼 환하며, 새벽 3시에 전국 어디를 가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고속도로,철야 영업 술집의 조명시설,가로등이 오락과 안전에 필요한 것보다 5∼6배 이상 밝다.

그러니 은하수는커녕 별마저 보기 힘들게 되었다.별빛 총총한 밤길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던 애인들의 낭만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된지도 오래다.

캄캄한 밤을 다시 살리고 별빛을 되찾자는 이들의 강력한 요구에 마드리드는 가로등 5만개를 교체하기로 했다.바르셀로나,코르도바 등 다른 도시와 마을들도 과도한 조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면 어두운 밤이 되살아나 별은 다시 빛나게 될 것이고 은하수도 하늘을 가로질러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나아가 자연생태계도 그동안의 혼란에서 안정을 찾고 인간과 모든 생물들이 예전처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것이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스페인보다 더욱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조명으로 빛의 쓰레기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 도시에서는 대기오염으로 별을 보기 힘들지만 맑은 날도 비슷하다.일등성과 행성들만 어쩌다 눈에 띄는 정도다.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휘황한 네온사인과 하늘로 향한 조명들 때문에 은하수와 별은커녕 하늘의 존재마저도 느끼기 어렵다.

이는 천문학 연구에도 막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천문대는 대도시의 반경 1백km안에는 불빛 때문에 세울 수 없다.그러나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대도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형천문대를 건설할 형편이 못된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시골도 어디를 가나 조명과잉 상태를 이루고 있다.인가가 없는 깊은 산속이면 모를까 칠흑같은 밤이란 없다.가로등은 말할 것도 없고 오가는 자동차의 강력한 불빛,인근 거리의 네온사인 등이 밤의 안식을 앗아간다.가로등 및이나 도로면의 농작물이 제대로 생육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만 건강할 턱도 없다.혹시 기회 있으면 그런 조명들이 전혀 없는 어두운 곳에서 잠을 자보라.대부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어둠 속에서 안온하게 자던 인간의 본능이 빛의 쓰레기 공해 때문에 왜곡되고, 생태교란으로 병들어 가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단체가 권장하는 행복의 열쇠 21가지 중에 ‘매일 아침 동이 트는 것을 보라’는 것이 있다.어둠이 막 걷히는 이른 새벽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이 열리고 뭔가 시원해짐을 느끼게 마련이다.그것이 행복을 여는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그러나 산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침마다 동트는 모양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높은 건물들이 가로 막고 있기도 하지만 새벽까지도 각종 조명이 하늘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양에 맞추어 신체조건이 발달되어 왔다.그러나 밤에도 빛을 이용해보겠다는 욕구가 관솔불,등불,가스불을 고안하게 했고 인간도 서서히 여기에 적응해왔다.인간의 밤의 활동이 점점 확대된 것이다.

그로 인해 인류는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1897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사람들은 잠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생물들은 생체리듬을 잃었다.전기불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유용할 것을 과잉생산하고 낭비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지난 해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의 ‘국제 캄캄한 밤 협회’ 등 많은 단체들이 모여 빛 쓰레기를 몰아내고 하늘의 어둠을 되찾자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불필요한 조명을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 어두운 밤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우리도 여기에 적극 동조해야 할 것이다.하늘에서 사라진 별과 은하수를 찾는 것은 낭만과 동화의 차원이 아니다.환경과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늦출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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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2000년 0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