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간판 추방운동

서울시가 지난 1일부터 불법·불량 간판 추방에 나섰다.11월까지 3개월 동안 벌이는 이번 단속에는 시민단체와 광고물 철거 전문업체도 함께 나서며 광고물전문가,건물주,업체 대표,시민단체,안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도 발족,광고물 정비의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벌써 했어야 할 일로 늦은 감이 있는 점이나,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2002년 월드컵 축구 등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 명분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필요성이 오래 전부터 제기됐으므로 꼭 남을 불러다 벌이는 잔치가 아니라도 일찍 손을 대야 했다.그런 만큼 이제라도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환경권,보행권 등 시민들의 여러 가지 권리를 되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간판은 업소의 이름과 성격을 알리고 이해시키는 데 필수적이다.따라서 간판의 역사는 상품을 사고 파는 점포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간판을 일찍부터 내건 업종은 동양과 서양 모두 술집이었다.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시대 목로주점에서 담쟁이덩굴 비슷한 송악나무 가지를 묶어 내걸었으며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주기(酒旗)를 올리거나 주렴을 걸었다.

이는 기록상에 나타난 것이지 실제로는 훨씬 이전 시대인 고대 이집트,그리스,고대 중국에서도 간판이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서양에서 술집 못지 않게 간판을 많이 사용한 곳은 여관이었다.동양도 비슷했다.술집과 숙박업은 예나 지금이나 불가분의 관계인 점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중국의 영향권에 있던 우리나라도 주막과 객주집에서 깃발이나 등롱을 내걸어 나그네들을 불러들였으며,점쟁이들은 긴 장대에 헝겊조각을 매달아 간판 구실을 하게 했다.서양에서는 술집과 여관 이외의 농기구상은 삽을,옷가게는 가위를,모자집은 모자를 내걸어 간판으로 이용했는데 우리는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잘 알아서 이용했다.

오늘날처럼 간판에 상호를 부각시키고 광고적 성격을 강화한 것은 서양이 16세기 쯤부터였고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서 ○○상점,××상회라는 간판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그러나 경제규모가 작고 국민들의 활동영역이 좁았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간판이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업소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난립하는 불량·불법 간판들로 도시미관과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들의 건강까지 좀먹는 심각한 공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건물이란 건물은 간판으로 도배되어 흉물이 되고, 가게 밖 길거리의 입간판 등으로 보행자들이 걷기조차 힘든 곳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서로 튀기 위해 규격을 위반하며 무조건 크게만 내걸고, 색도 주로 원색을 남용해 눈을 피로하게 한다.이렇게 유치하고 무질서한 간판행렬 속에 사는 한국인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업주들까지도 이를 인정하지만 옆집이,경쟁업자가 하니 가만있을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소비자들이 간판을 보고 업소를 선택하는 비율이 낮지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산뜻하고 기분 좋은 인상을 주는 간판보다 무조건 크고 화려하며 자극적인 간판이 누더기처럼 어지럽게 내걸린 것이다.

관계기관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간판이 약 300만개 있으며 간판제작업자는 1만3000명에 이른다.간판시장은 IMF 이전 세계 6위로 상위였으며 지금은 조금 낮아졌지만 10위로 역시 높은 편에 속한다.이는 과도한 간판경쟁 풍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학력,경력 등 개인의 간판까지도 중시하는 사회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만나면 저 잘났다고 날뛰는 분위기에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거리에 나서면 무질서한 간판에 병이 드는 판국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혼란스럽고 자극성 강한 간판 숲에 노출되면 중추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저하되며 그것이 길어지면 위궤양,고혈압,정신장애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또 시계 혼란으로 교통신호등이나 표지판 구분이 어려워지며 교통사고 등 여러가지 사고를 일으킨다.간판 본래의 기능을 넘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단속활동을 3개월간으로 제한한 것은 충분하지 않다.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방안을 세워 밀고 나가야 한다.물론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등 각종 비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그렇게 되면 업주들도 여기에 따른 여러 가지 낭비를 줄일 수 있으므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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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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