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조사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그것도 정치에 관한 조사는 그 역사가 20년도 안 된다.정치,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옛부터 입을 잘못 열면 자신은 물론 삼족이 죽음을 당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는다고 해서 자기의 속내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실제로 조선조의 대부분 정변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국이후도 상황은 비슷했다.이승만정권부터 6.29선언까지 어용이나 체제옹호 발언 이외의 언급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다른나라에서 하는 여론조사 같은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그럼에도 정부와 집권당은 경찰,정보기관 등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고 야당은 나름대로 민심동향을 파악했다.하지만 그것들은 합리적,과학적 토대를 갖지 못해 기관끼리의 충성경쟁 등 엉뚱한 부작용을 많이 일으켰으며 게다가 음지로만 유통되며 으시시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여론조사가 판을 치는 요즘 그런 때를 되돌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우리에게 그런 면이 있었던가 싶게 자기 의견과 태도를 당당히 밝히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었다.주로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지만 디지털시대를 맞아 인터넷 등을 통한 여론교환이 활발해진 것도 눈에 띄는 큰 변화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각 여론조사기관과 언론매체가 다투어 총선여론조사를 실시,보도하는데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걸까.물론 이번 뿐만이 아니다.대통령선거,총선,지방선거를 한번 이상씩 치르며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적중률이 높은 적도 있지만 어떤 때는 크게 빗나가기도 했다.

이를 놓고 정치판에서는 아전인수격의 공방이 오가지만 그보다는 다른 원인이 더 많은 것 같다.우선 국민들의 열리지 않은 입을 들 수 있다.아무리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과거의 피해의식이 그대로 남아 쉽게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다.한 수 더떠 반대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은 감안하여 여론조사기관들이 더욱 과학적이고 세련된 방법으로 접근해야겠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대안이 없다고 한다.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면서 결과를 주문에 맞추도록 은근히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또 여론조사 성수기인 선거철이 되자 수준미달인 기관이 난립,덤핑을 하는 것도 이런 혼란을 부추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여론조사의 긍정적인 면은 크다.시민들의 바른 판단과 여론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다만 정확도가 높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유력한 조사기관과 언론매체들이 원칙과 공정한 기준에 의거해 실시,분석하고 그 자료를 널리 공개해야 한다.그렇지 못한 조사는 자연히 이와 비교돼 저절로 퇴출될 것이다.그것은 또한 우리가 수준높은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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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ukminilbo.co.kr
국민일보 200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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