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僞藥) 효과

복통을 앓는 사람한테 밀가루로 만든 가짜약을 먹이거나,배에 옥도정기를 발라주었더니 감쪽같이 낫더라는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를 가끔 들을 수 있다.호랑이 담배 피우던 1950,60년대 군대 시절이 화제에 오르면 으레 단골로 등장한다.그러면 일반사회의 유사한 사례도 그럴싸하게 잇따른다.

그러나 이게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아서 가짜약 또는 약 비슷한 것을 사용하여 효과를 보는 위약효과(僞藥效果.placebo effect)에 대한 연구가 꽤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제도권 의학은 대체로 회의적이지만 실없다고 일축할 수만은 없는 일들이 곧잘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약효과는 ‘내가 만족시켜 주겠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약물 활성이 없는 가짜약을 이용해 낫는 것을 말한다.과거 수세기 동안의 원시적이고 비의학적인 신념치료,정신치료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런대로 효과를 거뒀다.

따라서 이를 규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이 있었다.캘리포니아대의 존 레빈은 병으로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의사와 간호사가 없이 컴퓨터를 통해 주사를 맞게 했고 나머지는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정식으로 주사를 놓았다.통증을 줄이는 주사약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식염수에 불과했다.그 결과 컴퓨터쪽 그룹은 통증이 거의 줄지 않았고 의사쪽 그룹은 많이 줄었다.

말기 종양환자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혈청치료를 받고 3일 뒤 매우 호전돼 의사도 놀랐다.그러나 두 달 뒤 그게 가짜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실망한 환자가 곧 사망한 사례도 미국에서 있었다.그 밖에도 많은 위약효과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뇌의 화학작용 촉진 물질을 밝히거나 신경심리학 연구 등을 통해서 위약효과를 규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그렇게 되면 질병치료에 많은 발전을 가져 올 것이다.그러나 위약효과는 아직도 수수께끼 단계다.다시 말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차 약효시험 440 품목 가운데 약 33%가 불합격 또는 판정유보를 받았다.나아가 국내에서 생산하는 4649개 전 품목 가운데 절반가량이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약 의존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높은 한국인들이 그만큼 함량미달 또는 가짜 약을 많이 사용한 셈이다.무늬만 약인 물질들을 그렇게 많이 썼으니 나라 전체가 거대한 위약효과 실험실 역할을 한 꼴이다.그 결과 의학연구에 밑거름이나 됐으면 다행이겠는데 그럴 리는 없고 많은 사람들의 건강만 해쳤을테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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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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