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도 인터넷으로

유언은 생애에서 가장 불행하면서도 효력있는 기록이라는 말처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껄끄럽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다.죽음 자체가 외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중요한 통과의례인 것처럼.

값진 예술품을 많이 소장한 굉장한 부자가 이제 막 청년으로 접어든 외아들을 잃었다.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도 몇 주 뒤 세상을 떴다.그는 모든 재산을 경매로 처분하되 죽은 아들의 초상화를 가장 먼저 팔라고 유언했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예술품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으나 아무도 죽은 청년의 초상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마지막까지 작자가 나서지 않자 평소에 그 아들을 사랑했던 늙은 하인이 안타까워하며 75센트에 불과한 싼 값으로 구입했다.

그 순간 다음 단계 유언이 공개되었다.경매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초상화를 살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모든 재산을 주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부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유언으로 택한 것이다.그러나 아들 사랑과 재산 상속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이처럼 간접적으로 표현해 만약의 경우에 대비했다.가장 불행하면서도 강력한 효력을 지닌 유언을 그는 현명하게 작성하여 자기의 뜻을 최대한 관철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이승을 떠나면서 이처럼 할 말이 있는 것이고 또 해야 한다.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미리 유언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그래서 평소 작성해 놓고 환경과 심적 상황이 달라지면 일부분을 고쳐 쓰거나 새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부에서 일어나고 호응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살아 있지만 유서를 쓰면서 자신의 생을 반성하고 앞으로 남은 생을 여러모로 새로이 기획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유언 전문 웹사이트’(www.wishbank.co.kr)가 국내에서 곧 문을 연다.회사측에 따르면 이는 개인의 역사 박물관 기능도 하게 돼 후손들은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조상이 남긴 자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범운영 결과 의사,교수,은행원,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호응했고 아직은 유언보다는 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맹세가 많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언도 차츰 늘어날 전망이다.당분간은 공개유언만 다루며 상황에 따라 수정도 할 수 있다.앞으로 비공개 유언도 다루며 이에 대한 법적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률공증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죽음과 유언을 감성적 측면 못지않게 이성적·합리적으로 대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면 삶을 날마다 더욱 새롭고 가치있게 꾸려나갈 수 있다.뿐만 아니라 떠난 뒤 주변과 유족에게도 짓누르는 슬픔보다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는 등대가 된다.그런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유언 웹사이트는 많아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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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2000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