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XX청과'라고 되어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구멍가게로 과일의 비중이 조금 높을 
뿐이다. 부근에는 더 큰 과일점, 대형 수퍼마켓, 24시간 편의점 등이 있어 장사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눈으로 봐도 이 가게의 이른바 경쟁력은 보나마나일 것 같다. 게다가 툭하면 물건 
사러 온 사람을 큰 소리로 꾸짖으니 요즘 세상에 제 정신인가 싶다.

 값도 다른 곳보다 비싸면 비쌌지 결코 싸지 않다. 그럼에도 동네 아줌마 등 고객들은 야단
맞는 것도 좋다며 이 집으로 과일을 사러 간다. 가게 아저씨가 내일 모레 6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잘 생긴 것도 없다. 런닝 셔츠만 걸쳐 입는 등 복장도 양호한 편이 아닐 때가 많고 
툭하면 낮술에 취해 취생몽사 중이라 남다른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과일을 파는 데 자신이 있으며 당당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가게 과일
은 맛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내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동네 과일 다음이라고 한다. 

 솔직한 건지 너도 나도 1등이라는 세상에 2등이 더 솔직한 것처럼 보여서 그런지 알 수 없
지만 그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등급을 공개(?)한다. 어느 할 일 없는 사람이 두 군데 것을 
비교해보지 않는 한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고 설령 그렇다 한들 1등과 2등의 차이를 알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확실한 것은 그 가게 과일이 분명히 맛이 있다는 것이다. 혹 누가 이것 맛이 좋을 것 같느
냐고 물으면 그는 벌컥 화를 내며 사정없이 손님을 나무란다. 자기가 도매시장에서 얼마나 
공을 들여 골라온 줄 아느냐며 꾸짖는 것이다. 자기는 한 평생 이 장사를 해 왔지만 맛 하
나는 자신한다고 떠든다.

 머쓱해진 손님은 다음에 그 꼴 보기 싫어 다른 가게를 찾는다. 그러나 곧 맛에 차이가 있
음을 알고 결국 그 가게로 돌아간다. 아파트 등 인근 사람들은 대부분 한번쯤 이를 겪고 곧 
이집의 단골이 된다. 주인 성질은 더러워도 상품 질 하나는 분명하다고 허허 웃으며. 그런 
다음 모두들 그 주인과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진다.

 그러나 자기 주장대로 과일 전부가 좋을 수는 없다. 어쩌다 맛이 떨어진 것이 있어 가지고 
가면 먹다 가지고 온 것이라도 두 말 없이 환불해주거나 새 걸로 준다. 자신이 아무리 잘 
골라도 손님이 직접 먹어 보고 맛이 없다면 그때는 두 말 없이 인정한다. 단 먹어보지도 않
고 의심하면 가차없이 그의 꾸지람이 날아든다.

  한번은 틈이 나 그에게 물었다. 과일의 맛을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으며 경쟁이 치
열한 세상에 그것만 가지고 버티어 낼 수 있는가를. 대답은 간단했다. 과일 고르는 일은 전
문적이고 비결이 있는 것이어서 말할 수 없지만 맛 즉 품질만 확실하면 누구와도 자신있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점상부터 시작, 30여년간 과일 장사를 하면서 그가 터득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아무도 
모르는 해법이 비결이라면 그의 방법은 비결도 아니다.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
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는 남들이 비결을 찾아 헤맬 때 실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확실
한 신뢰감을 심어준 것이다. 

 그는 마케팅, 시장조사, 고객위주 서비스, 경쟁력 같은 말들은 알지도 못한다. 너도나도 그
런 말들을 입에 번지르르하게 달고 다니는 요즘 몰라도 아무 지장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용어를 머리 속에 담고 있다면 그는 행동 속에 담고 있다. 즉 고객에 대한 굳은 신용
과 최고의 품질로 묵묵히 물건을 파는 속에 그 용어들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IMF도 덤벼들지 못했다. 오히려 재산이 늘어 지금은 아파트가 세 채나 된
다. 30여년간 최고의 품질로 신용을 쌓은 결과라고 옆에서들 칭찬하니 거기에 가버린 청춘
과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이 부서지도록 해온 고생도 포함돼 있다며 장한 듯 씁쓸한 듯 웃었
다. 디지털 경제니 뭐니 하면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이 수다스럽고 
조급한 세상에 정작 필요한 성공의 비결은 영원히 불변한다는 점을 그는 오늘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