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걸음 장애인복지
 두달전 쯤 어느 TV에서 밤늦게 방영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다튜멘타리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지능이 5살 정도밖에 안된 20대 청년과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동생
이 형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는 시련이 자꾸만 가슴 깊이 아프게 파고 든 때문이다. 부모 없이 형
제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텐데 그런 고난까지 겹치다니...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 그 방송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속
으로 울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보낸 격려의 글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그 이전에 방영된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편지들도 마찬가지로 쇄도했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
도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건 잠시였다. 저렇게 많은 격려와 따뜻한 마음이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당사자들의 힘
을 북돋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을 줄까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서 현실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그 페이지에 그 형제의 전화번호 등이 게시되어 있었다. 얼른 계좌번호를 적어 두었다가 
오후에 잠시 시간을 내 은행으로 갔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돈 몇푼이나마 보내는 
것 뿐이었다. 그건 그 형제를 위한 것보다 안타까움에 갈피를 못잡는 내 마음을 달래는 것임을 
깨닫고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금입출기에서 자동이체를 하는데 계속 거부를 했다.이상하다 싶어 창구직원에게 물으니 계좌
번호가 틀리는 것 같다고 했다. 분명히 몇차례 확인을 하면서 베꼈다고 생각했는데 틀리다니. 그
러면 회사까지 가서 다시 확인하고 오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그게 간단치 않아 귀찮은 마음이 슬
그머니 들고 나도 모르게 포기하기 위한 핑계를 찾고 있었다.

 내가 그 형제를 장기적으로 도울 형편이나 관계도 아닌데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프
로그램으로 인해서 잠시 받은 충격과 감동도 내 일상에 파묻히면서 벌써 상당히 시들고 있었다.
그런데다 모처럼 작으나마 행동으로 옮겨보려 했던 것이 틀린 계좌번호 때문에 주춤거리니... 슬
그머니 내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남들의 일과성 충동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사는 나 역시 거기
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에 대한 반동으로 빨리 회사로 되돌아가 번호를 재확인한 뒤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내가 기껏 한다는 게 이 정도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무력감과 자책감 때문이었
다.

 우리 사회에는 특정한 사안을 기리는 날이 많다.어린이 날,어버이 날, 스승의 날, 광복절, 3.1절,
한글날, 물의 날 등 숱하다. 언론의 성격상 이런 날들이 오면 자연히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
다. 어린이 날이 오면 그에 따른 갖가지 문제로 도배질을 하고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는가 싶게 
다른 사안으로 옮겨간다. 그러다 보니 독자와 시민들은 언론이 뭐하나 지속적, 근본적으로 접근하
거나 개선하는데는 마음이 없고 일시적인 관심만을 보여 오히려 문제를 만성화한다고 비난한다.

 거기에 대해 언론으로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비난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나 역시 장
애인의 날이 오면 슬그머니 화가 난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분야 속에 사회 각층의 복지문제가 
들어있어 그때마다 장애인복지 문제와 크게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고 정부와 시민들의 각
성을 촉구한다. 

 각계각층의 행사도 요란하다. 장애인의 고통을 직접 겪어본다든지 하루를 함께 한다든지 다양하
다.그러나 그날이 지나면 그뿐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거론했던 문제를 다시 들먹이게 되고 이
미 했던 반성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조금 나아지고 개선이 이루어지면 기사나 사설도 
거기에 기초해 달라질텐데 그렇지 않으니 했던 소리 또 하고 같은 말 반복하게 된 것이다. 그래
서 장애인들 못지 않게 반짝 관심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 형제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다음 날 내가 밟은 일련의 과정도 반짝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
다. 모르긴 몰라도 홈페이지에 격려와 동정의 글을 올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느낌
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관심과 격려가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의 복지문제를 풀어가는 큰 힘이 되지만 그것이  
조직화하지 않고 지속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신문,방송에 나와야만 그나마라도 눈길을 끄는 
것은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고 지엽적일 뿐이다. 매스컴에 거론되지 않은 더 
많은 장애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인 문제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개인이나 가정에만 맡겨둘 수 없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선
진국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틀이 제대로 짜여져야 국민 개개인의 
관심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되어 그들에게 직접적인 힘이 된다.그렇지 않으면 충격과 감동에서 보
여 준 관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태풍처럼 소멸하고 만다.

 장애인에 대한 각 개인의 이해와 온정은 절대 필요하다.그러나 이것이 제도적 장치와 연결되지 
않으면 단순 미담 정도로 끝나고 만다. 즉 구슬을 꿰어야 장애인 문제를 법적, 제도적, 영구적으
로 대처해 나가는 보배가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아가 이 사회의 큰 저력이 됨을 명심해 국가,
사회 각계 각층이 더욱 진취적인 자세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2000.여름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