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9일 [그해오늘은] 공무원'輪理'헌장 정부가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사정한 결과 2065건의 비리가 적발됐다는 보도다. 그것은 20년 전 오늘 세종문화회관의 풍경과는 너무 딴판이다. 그 자리에서는 3급이상 공무원 4000여명이 공무원 윤리헌장을 선포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오늘도 민족중흥의 최일선에 서서…." 그 소리는 방방곡곡을 울려 얄팍한 잔꾀를 부리려던 공무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했으나 아직도 '공무원' 다음에는 곧잘 꼬리표처럼 '비리'가 붙는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청렴'이니 '부패근절'이니 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선서를 하는 모습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니 그것은 '윤리'(倫理)헌장인지 '윤리'(輪理)헌장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그날의 선서식에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전직 고위공무원 등이 '내빈'이나 '외빈' 등의 명목으로 참가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었다. 그로부터 1년 남짓만에 장영자사건이라는 대형 금융부정사건이 터져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윤리헌장'이 너무 멋지고 고상하다는 점이다. 윤리란 법보다 품위가 있으나 법이 지켜지지 않는 마당의 윤리란 어느 폐사(廢寺)의 벽에 쓰인 불경 구절보다 허망하다. 따라서 공무원 윤리헌장을 선포한 지 1년 만인 1981년 12월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한 것은 제정신 들린 짓이나 그것도 '윤리'식으로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법조계도 '뇌물'과 '떡값'을 자신있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윤리헌장 선포식처럼 비싼 행사를 치를 일이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60년부터 실시된 '부패방지법'이나 '부정축재 몰수법'(89년) 같은 것을 커닝했으면 더 알기 쉽고 값도 쌌을 것이다. -----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yangp@sgt.co.kr 세계일보 2000.12.29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