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곬인생] 생태사진작가 이원규 태초에 蘭(난)이 있었다. 그러자 나비가 있었다. 나비를 쫓다 보니 곤충들이 있었고 생태환경이 있었다. 생태사진작가 李元奎(이원규.45)의 半生記(반생기)다. 경기도 시흥 태생의 농사꾼인 그는 어느날 종로5가의 종묘상 거리 를 지나다 난의 향기에 끌려 그것을 샀다. 농사일 틈틈이 난을 기 르며 생태의 변화를 사진으로 남기다 어느날 난을 찾아온 나비를 보 고 초점을 나비로 옮겼다. 집에 찾아온 나비로는 모자라 나비를 찾아 나서자 자연은 넓고 곤 충은 많았다. 곤충들의 생태계에 넋이 빠져있는 동안 자신의 생태환경도 바뀌어 「생태사진작가」니 「환경보호운동가」니 하는 호칭이 농부라는 본업을 가리고 있다. 『제가 매스컴을 타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 만 저는 아직도 농사꾼이에요. 농사수입으로 살아가고 그 바탕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슷한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도 냉정한 직업인의 자세를 갖춰 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신이 10년이상 시간과 돈을 산과 들에 버 린 끝에 나름대로 기반이 생겼으나 그것으로 얻는 수입이래야 활동비 로도 빠듯하다. 따라서 생계대책도 없이 막연한 기대를 갖고 뛰어들 면 집안일도 바깥일도 다 망친다. 『물론 저는 학문적 바탕도 없는데다 우리나라의 자료들도 빈약한 가운데 시작한 게 사실입니다. 이제는 여건이 많이 좋아졌으나 오랜 기간 미련하게 투자만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요.』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나오는 羽化(우화)과정을 찍으려면 꼬박 1주일 이상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비가 날 아가는 자태만 보고도 알을 까러 가는지 먹을 것을 찾아가는지 알아 야 하나 그 방법도 책에는 없다. 오랜 세월 나비를 짝사랑해야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80년부터 나비를 쫓기 시작했습니다만 한번도 본업을 소홀히 하 지 않았습니다. 논과 밭이 3천여평인데다 젖소들을 길렀으니 그 일 만도 바빠 자투리시간을 최대한 이용했지요』 이원규는 들일을 나갈 때 농기구와 함께 카메라가방을 들고 나갔다 . 처음 몇년간은 시흥밖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지도 않았다. 「작 품」을 만든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기에 주변의 나비만 찍기도 바 빴다. 『중부지방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나비가 만나는 중간지점이라 시흥에 나타나는 나비만 다 찍어도 우리나라의 나비를 대부분 찍는 셈이지 요. 그러다 책을 통해 희귀종 나비들을 알게 되자 이들을 찾아 나 서게 됐습니다』 그래서 속리산이나 강원도 일대를 자주 갔으나 농사에 지장이 없도 록 하루치기로 다녀와야 했다. 『87년 가을에는 치악산 정상부근에서 황혼녘이 되어 돌아오려는데 구름표범나비를 만났어요. 녀석이 자꾸만 날아가는 바람에 한적한 계곡으로 두어 시간 쫓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혼이 났습니다』 정상쪽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알았으나 막차를 놓칠까봐 길도 없는 계곡을 물길만 따라 내려갔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수없이 나딩굴었고 절벽에서 떨어질 뻔도 했으나 새벽 2시 넘어 집에 들어섰다. 대 문에 들어서는 순간 젖소우리로 달려가야 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기르고 가꾸기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시절(서울 동양공고)에는 큰길에서 집까지의 수백m에 이르는 소로변에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어요. 생물성적이요? 글쎄,중학시절에는 좋았지만 공고에서는 배우질 않아서…』 공고에서는 생물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6.25전에 부자 아닌 사 람 없고 국민학교때 공부 못한 사람 없다던 한세대 전의 농담이 떠 오른다. 하긴 그에게 생물성적을 묻는 자체가 얼빠진 짓이다. 생물을 가슴 으로 사랑하는 것과 머리로 생물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인체생물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남녀라도 멋진 사랑을 나눈다. 이원규의 중학시절 생물점수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그의 생물점수 를 매길 사람을 찾기가 힘들게 됐음은 분명하다. 그는 처음 몇년간 맹목적으로 셔터를 눌렀으나 사진기술도 나비지식 도 없는 것들이어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됐다. 나비사랑이 짙어가자 어쩔 수 없이 사진공부와 곤충공부를 해야 했고 사진도 세련돼 갔 다. 『당시는 그것이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지요. 일 본책들을 보고 제 사진의 완성도가 제법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 했을 뿐이지요』 90년대초 이원규는 우연히 생태사진작가협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다. 작가들은 농투성이 차림의 그가 회원이 되겠다는 데 놀 랐고 작품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협회가입을 계기로 그의 사진이 매스컴에 알려져 91년에는 현암사 에서 나비가 번데기 상태에서 날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 주는 「땅에서 하늘로」를 펴냈다. 뒤이어 동방플라자전시장에서 「한국의 나비」전을 열어 80종류 1 백점의 나비사진을 보여줬다. 『겉보기에 그럴듯 했고 속으로 울었지요. 전시경비가 모자라 아끼 던 중형 카메라렌즈를 팔아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 렌즈는 집에서 재배하던 난을 수백분 내다 팔면서 아내에게 값 을 속여 모은 비자금으로 산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를 계기로 흙에 파묻히듯 살아온 이원규는 한국최고 의 나비사진작가로 「羽化(우화)」했다. 소문을 듣고 그의 구석진 마을까지 찾아온 TV제작진들은 몇번이고 『정말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원규가 나비사진을 찍기 위해 별장살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찾아왔 던 것이다. 그 방송이 나가자 이웃사람들이 놀랐다. 이 착실한 농부가 들일을 나갈 때 뭔가 가방을 메고 나가고 이따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적은 있었으나 그처럼 미친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것은 이원규 자신이었다. 자신의 작업환경이 크게 바뀐 것이다. 「땅에서 하늘로」를 내놓은 다음해는 이것을 보완해 재야 나비학자 김정환의 글과 함께 「우리 나비 백가지」를 내놨다. 그때까지 까 마득히 비치던 「저자」라는 호칭으로 한국생물학사의 기념비적인 책들 에 그의 이름이 실렸다. 그런 책들이 이제 10권을 헤아리는 동안 「판권수입」이라는 낯선 돈도 만지게 됐다. 아내의 눈을 속여서 산 카메라를 이웃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몰래카 메라처럼 숨긴 채 가지고 다니던 그의 운신폭이 커졌다. 출판수입이 생기자 손길이 많이 가는 젖소를 비육우로 바꿨다가 아예 소를 처 분했다. 5년전 중고지프를 사서 시간을 벌게 된 것도 그런 바탕에 서였다. 나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관심폭이 커져 활동반경도 곤충전반으 로 옮겨 갔다. 『나비들의 생태를 쫓다 보니 나비들의 천적이나 공생관계에 있는 곤충들의 존재가 다가왔어요. 바둑돌부전나비가 육식성으로 애벌레는 일본납작진딧물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놀랍고도 재미있어 곤충 전반에 관심이 갔어요』 최근 이원규는 생물학자 金鎭一(김진일.성신여대)교수와 함께 「쉽 게 찾는 우리 곤충」을 내놨는데 여기에는 4백14종의 곤충사진 4 백70컷이 실려 있다. 날아다니는 것만이 아니라 헤엄치는 것도 찍었다. 94년에 현암사 가 내놓은 「우리 민물고기 백가지」에는 그가 찍은 1백8종의 물고 기사진이 실려 있다. 최기철박사의 저술을 내놓기 위해 출판사가 그 에게 부탁해서 몇년동안 산 대신 냇물을 뒤져서 찍은 것이다. 그로 서는 또다른 체험이지만 외도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워 한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새삼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너무 뒤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나비사진작가들이 호랑나비과 흰나비과 식으로 나눠서 일하고 있는데 우리의 나비연구는 뭡니까』 세계적으로 소문난 「나비부인」의 주인공들이 나비사진에 앞섰기로 그렇게 흥분할 일인가. 그러나 이어지는 이원규의 말에 그런 객쩍은 소리는 삼켜야 했다. 『나비만이 아니에요. 한국곤충들의 생태계를 공부하려고 아무리 책 을 찾아도 없거나 일본책을 마구 베껴 비슷한 일본곤충을 얼버무려 내놓은 것뿐이에요』 이원규는 우리나라의 매미가 몇년만에 알에서 나오는가를 자신있게 아는 이가 있느냐고 반문하더니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애 매미의 그것은 이제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가 수년전 자기 집에서 직접 애매미를 길러 3년만에 나온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곧 매미의 그것도 밝혀질 것이다. 그가 올해 직접 길러 알을 받 아놓은 것이다. 『저는 한국인의 자질이 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고 따라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조선조때의 나비화가 南啓宇(남계우.1811∼88) 선생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어요. 그림의 배경묘사가 나비의 생태계와 완전히 일치해서 놀랐습니다』 그는 남계우만이 아니라 짧은 일생을 나비에 미쳐 보낸 石宙明(석 주명.1910∼50)도 존경한다. 6.25의 와중에서 의문의 변사 체로 발견된 이 나비학자가 간 지 5년만에 태어난 이원규는 흙묻은 손으로 나비를 쫓는 동안 나비를 통해 세계속의 한국을 보고 한국 의 역사를 보며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