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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곬인생］작가 김일주씨는 문단 기록사진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한다． 화가는 그림만 보여주고 문인은 글만 보여주면 되지 달리 자신을 나타내려 하면 속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몸으로도 말한다．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千祥炳（천상병）이＜이젠 몇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당한 그날은／．．．＞이라고 읊은 「그날은」은 아이론밑의 와이셔츠 위에 대는 헝겁처럼 얼룩진 그의 얼굴이 먼저 말해준다． 고호의 말년 사진이 없다면 사람들은 「해바라기」에 감추어진 그늘까지 읽을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작가들의 행적을 챙기는 것은 문화보존이자 창작의 완성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바쁜 세상에 누가 빛 바랜 사진들을 보살필 것인가． 후손들도 선친의 「저작재산권」을 살리는 수준에서 챙기는 것이 세태다． 유작에서 재산권이 증발해버린 작가들의 사진이나 유품은 후손들이 이사할 때마다 쓰레기로 분류되고 그러다 보면 작품도 문학사에서 「수거」되고 만다． 金一州（５７）는 이처럼 쓰레기가 될 사진들을 ３０여년이나 생산해서 쌓아두는 사람이다． 그는 문인들의 글만이 아니라 그들이 술집에 서 입맞추거나 「물건」을 만지면서 시낭송하는 너절한 모습까지 아낀다． 문인이 세명 이상 모이는 자리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기에 그처럼 유명한 「문단인사」도 드물지만 막상 그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는 어렵다． 『흔히들 「문인사진작가」라고 하지만 저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문인이예요． 그리고 이 일도 문학활동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어느 사진작가들의 모임에도 등록돼 있지 않다． 월간 현대문학에서 ６６년 소설 「山靈祭」(산령제）로， ７９년 「상청」 으로 두차례 추천을 받아 문협에 등록 돼 있다． 김일주 자신이 팔자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의 글사랑과 카메라사랑은 어느 것이 첫사랑인지 따지기 어렵고 끝내는 「문인사진작가」로 한집살림을 차린 셈이다． ４２년 황해도 해주태생인 김일주는 인천중학시절부터 중고품카메라로 사진찍기를 즐기면서 문학소년을 자처했다． 분명 엉덩이에 뿔이 났으나 어느 뿔이 엉덩이에 난 것인지는 아직도 알수 없다． 그래도 고２때 백일장에서 수필부문 장원을 하고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진학할 때는 카메라뿔이 가리어졌다． 대학 ３학년때 교내 현상문예에서 소설부문에 응모한 김일주는 시부문의 姜禹植（강우식）과 함께 당선했고 ６６년에는 현대문학에서 １차 추천도 받았다． 그러나 경기일보 문화부기자가 되면서 그는 다시 카메라를 메기 시작했다． 신문사에 사진자료가 빈약해 직접 인천의 문화인들을 찍게 됐다고 하나 타고난 역마살에다 카메라뿔이 다시 돋아났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６８년 시인 趙芝薰（조지훈）이 작고하자 그는 펜을 팽개치다시피한 채 사진가방을 메기 시작했다． ２년뒤에는 아예 문인들을 찾아 서울의 독서신문으로 옮겼다． 『조지훈선생이 가셨는데도 쓸만한 사진이 없었어요． 경기일보만이 아니라 문화계 전체가 문인들의 기록에 무심한 것이 견딜수 없어 아예 나선 것이지요．』 날로 사라지는 한국문단사의 유산들을 지키기위해 출사표를 던진 격이니 얼마나 숙연한가． 그가 우리 문단의 「승상」이 아니라 잡지사의 １차추천을 통과한 「인턴 작가」였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것은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고 불편이나 서러움으로 이어졌다．시상식 뒤풀이같은 술자리에서 친한 문인들끼리 오손도손 술맛을 내려는 순간 사진가방을 메고 들이닥치는 그를 반길 사람은 없었다． 하필이면 기관원들이 설치던 시절이라 김일주의 존재는 좋게 봐야 「이방인」이고 심하면 재앙을 퍼뜨리는 「페스트」였다． 『문단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곤욕을 치렀어요． 70년대초 김지하시인이 출옥한 직후 술집에서 그를 찍었다가 기관원으로 몰려 봉변하기도 했지요．』 그들은 필름까지 뺏으려 했으나 김일주는 이것을 빼돌리고 다른 필 름을 주었다． 덕택에 카메라를 손으로 막으려 했던 김지하의 모습은 살아나 70년대의 한국문단에 드리워진 한자락의 그늘을 보여주고 있다． 그 무렵 월부책 외판원들이 기승을 떤 것도 그의 어려움을 더했다. 김일주는 카메라만 들고 다니지 않았다． 녹음기도 들고 다니며 문 인들의 육성을 채록하는 한편 육필원고도 모았다． 육필원고는 그가 독서신문과 문학사상사 한국문학사 등에서 일하는 동안 틈틈이 모으기 시작했으나 소문이 나자 출판사들이 그를 불러 「원고 쓰레기」를 치우게 했다． 그래서 이제는 문인 １천명의 육필 원고지가 트럭 한대에 가득찰 만큼 모였다． 육성녹음은 카세트테이프 １백여개분． 『몇년 지나니 얼굴이 알려져 일하기는 수월해졌어요． 그러나 사진을 찍기만 하고 사진을 주지 않는다는 원성에 시달렸어요．』 작가들은 모두 「내 사진 한장」을 달라지만 그는 수천명의 사진을 주어야하니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입이 걸직한 여류문인들 사이에서 그는 「가장 정력이 센 남자」가 됐다． 「박을줄」만 알고 「뺄줄」을 모르기에． 그런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필름은 쌓였고 김일주는 문단의 소식을 가장 잘 아는 증인이 됐다． 문단은 참여파와 순수파를 비롯해 온갖 분파로 단절돼 있었으나 그를 가로막는 울타리는 없었다． ７９년에는 ２차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등단하자 본명인 「泰榮」（태영）을 일주로 바꿨다． 소설가 명단에 「김태영」이라는 한글이름이 있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였다． 『소설가이자 작명가였던 조영암선생에게 부탁했더니 「一洲」라는 이 름을 주어서 제가 「一州」로 고쳤지요． 멋대로라구요？ 발음도 같고 비슷한데 간단해서 좋지않습니까．』 작명가들이 지은 이름은 우주선처럼 정교한 완제품이어서 그 부품격인 한자의 획이나 점을 함부로 손대면 운세가 공중폭발하거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적당히 손질해서 쓰는 기성품같은 것이라면 왜 작명가에게 부탁했을까． 아무튼 그는 새 이름으로 문인으로써 첫발을 내딛었고 막상 문학작품에는 별로 써먹지 않았으나 이 이름으로 오늘에 이른다． 『제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었어요． 작가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작가 가운데 누군가는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주의 「진짜 등단」은 ８２년 １백여 문인들의 이모저모를 보여준 「한국문인사진전」이었다． １０여년간 요란스레 냄새만 피우던 그가 한국 문단에 한 상을 차려 내논 것이다． 그 이듬해는 「시인의 얼굴」전을 열었고 ９０년 인물계사 편집장을 그만두자 아예 그 일에만 매달렸다． 실업자가 됐다고 더 어려울 것은 없었다． 원래 가계는 그의 어머니와 부인이 인천 연안부두에서 장사를 해서 꾸려왔다． 실업자가 돼서 달라진 것은 연안부두에 가서 일을 거드는 시늉을 하고 이따금 필름값이 모자라 점심을 굶는 정도다． ９７년 ５월 그의 어머니는 윤석화의 어머니 등과 나란히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탔다． 그 상장이 필름처럼 뒤집어서 볼 수 있다면 「불효 예술가 상」이나 「빵점 예술가 남편 상」으로 둔갑할지도 모른다． 요즘 김일주는 또 다른 고민으로 집안일에 더 관심이 없다． 자신이 ３０여년간 모아논 자료들을 보존할 문학박물관이 들어서야 하나 그럴 낌새는 보이지 않은채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문학의 해였던 ９６년에는 교보의 지원으로 「한국현대문학의 얼굴」전이 열렸고 문학박물관을 세우자는 논의도 활기를 띠었어요． 그러나 해가 바뀌자 잠잠해지더니 ＩＭＦ가 터지자 그건 잠꼬대같은 소리가 됐습니다．』 그래서 문학박물관은 그만두고 발등의 불이라도 끄고 싶으나 그것도 어렵다． 가장 급한 것은 습도조절도 안된 마루방에 둔 육필원고들이 상하고 있어 이것을 보관할 공간이라도 얻는 것이다． 지금까지 찍은 필름들도 배경설명이 없으면 필름쓰레기가 되기 마련 이라 나이들기 전에 그것을 정리하는 것도 급하다． 그것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듯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문화정책당국 이나 문단이 나서야 되는 사업이다． 『끝발깨나 있다는 사람들마다 문화를 들먹이지만 문학은 문화의 밑바탕이고 따라서 문학사의 이런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야 말로 문화 아닙니까． 새삼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아요．』 그러나 문학사박물관이 들어서면 윗자리에 헌액될 중진문인들부터 이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들이 무심할수록 김일주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그러나 차라리 광야의 외침이라면 울림이라도 있으련만 그의 「인천 연안부두의 외침」은 온갖 삶의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다．
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 제1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