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 문화인] 인터넷문학 마당 '작가네트' 대표 조현진씨



  마가레트 미첼은 10년간이나 고생해서 '바람과 함께 사리지다'를 썼으나 진짜 고생은 그 때부터였다.

글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어서였다.

  아틀랜타 저널에서 5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나 종군기자로 부상을 당한 그는 당시 아틀랜타에서 휴양하는 무명작가였다.

5년 남짓 출판사를 기웃거리자 원고는 너덜너덜해 작품이 먼저 바람과 함께 사라질 판이었다.

  어느날 뉴욕 맥밀란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이 아틀랜타에 왔다 간다는 기사를 보고 정거장으로 쫓아 갔다.

마침 차에 오르려는 레이슨에게 미첼은 "한 페이지라도 읽어 주세요"하며 원고뭉치를 던지듯 안겼다.

  레이슨은 그것을 마지못해 받았으나 차에 오르자 선반에 던졌다.

차가 한 시간쯤 달리자 그에게 전보가 날라 왔다.

"그 원고 한 페이지만 읽어 주세요 미첼".

그런 전보가 세 차례나 오자 견디다 못해 원고를 펴 본 레이슨은 차가 뉴욕에 도착한 것도 모른 채 그 속에 빠져 있었다.

  세기의 베스트셀러는 이렇게 나왔다.

어딘지 과장이 섞인 듯하나 작가와 독자 사이에 있는 출판이라는 관문이 장벽처럼 높을 수 있음을 잘 말해 준다.

그 벽을 넘지 못해 돌아서야 했던 유망작가의 명작은 조용히 묻혀 말이 없을 뿐이다.

  그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인터넷은 모든 작가지망생을 독자들 앞에 세워준다.

그들의 '노래'가 박수를 받거나 야유를 받는 것은 다음 문제고 일단 무대에 설 수는 있다.

작가를 지망하면 누구나 글을 올려 독자들이 읽는 회수에 따라 고료를 주는 '작가네트'(주)(zaca.net.)는 이런 '만인 작가시대'의 주역이다.

고료만이 아니라 인기있는 것은 출판도 해준다.

  "지금까지 작가가 되려면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추천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작가의 자질을 심사하는 것이니 얼핏 당연해 보이나 문제가 많습니다.

심사위원도 편견이 있을 수 있거든요."

  작가네트의 조현진(趙賢鎭.29)대표는 전문가의 편견만이 아니라 그들의 눈과 소비자인 독서대중의 눈이 다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지망생이 글을 쓰고 그 '가치'도 일반독자들이 가리게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쓰고 일반인이 심사하니 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로 사이버공간에서 만나는 셈이다.

  지난 2월 문을 열고 나서 회원이 5만여명으로 늘고 이에따라 조회수도 늘어 원고료를 타는 작가가 달마다 2천명씩 늘어나도 사이버 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해 힘이 난다.

  "지금까지 사이버 문학경진대회로 상금을 주는 경우는 있어도 게재되는 모든 글에 원고료를 주는 것은 처음이지요.

지금까지 '원고료'라면 돈이기에 앞서 어딘지 선택받은 이들의 전유물 같았으나 이제는 보통 사람들이 품삯처럼 타게 된 것입니다.

문학을 전공했냐구요? 대학문턱도 제대로 밟지 못했어요."

  서울태생인 조현진의 고교(용산고)시절 꿈은 시나리오작가였다.

그것은 학원 대신 프랑스문화원이나 극장을 기웃거리며 영화나 보던 자신을 변명하려 내세운 구호기도 했다.

졸업하고 보니 물론 어느 연극영화과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재수생'이 됐으나 실제로는 그저 고교졸업생이자 실업자였다.

학원은 멀리하고 극장만 가까이 지내는 생활이었다.

  "좌표도 없이 헤매던 어느날 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어요.

'청기사 필름'이 제작하는 '비오는 날 수채화'가 촬영이 거의 끝나 곧 개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작정 쫓아가 전부터 광고기획을 한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영화사는 전사원이 사장 감독 기획실장 등 세명뿐이었으나 실망스럽기보다는 만만한 점이 더 편했다.

조현진이 배짱좋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고 선전을 담당하는 기획실장 아래서 무급이나마 일자리를 얻은 것도 그런 것이다.

거짓말을 잘 해서 영화사의 '기획실 차장'이나 '실장 조수'가 된 것이다.

그의 '연기'에 속은 듯 감투를 씌워준 영화사는 담배심부름을 시킬수 있는 공짜사환을 둔 셈이고...

  그러나 조현진은 광고문안을 스스로 짜내는 등 열심히 일했다.

학교에서 가르쳐 준 것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던 그가 처음 짠 광고문안은 호평을 받았다.

그가 윗사람에게 뭔가 잘 했다고 칭찬 받은 건 처음이었다.

두 달뒤에는 기획실장이 퇴사해 승진도 하게 됐다.

기획실장이라는 호칭도 봉급도 주지 않았으나 그가 해낸 일이 기획실장의 일이었다.

  고교시절 익혀둔 이벤트 솜씨로 '비오는 날 수채화'를 열심히 선전했다.

그 열성 때문인지 운이 좋아선지 이 영화는 89년 국산영화중 흥행실적 7등을 기록했다.

그러자 한국영화 광고시장을 주름잡는 중앙이데아가 스카웃 손길을 뻗쳐 왔다.

그는 무급사환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두배 가까운 봉급을 받는 영화계 유명인사로 변신한 것이다.

  "군대를 마치자 미국유학을 떠났습니다.

광고대행사나 영화사를 운영하기위해 경영학을 배우러 간다고 했습니다만 한국서는 가망이 없는 대학졸업장을 따내자는 것이 속내였지요.

밀워키의 위스컨신주립대에서 2년반 마케팅을 공부하다 중단했습니다."

  국내의 한 패션회사가 판촉실장으로 오라고 해서 그는 돌아왔다.

그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업은 부도가 났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 때는 새삼 자신이 대학과 인연이 없어 입학은 했어도 졸업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96년 귀국한 조현진은 패션 대신 본령인 영화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을 기획하는 등 기획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자 그는 인터넷 글공장이라는 구상이 떠올랐다.

누구나 작가로 참가하고 이를 읽는 독자들의 구매력을 광고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었다.

여기엔 일찌기 광고에 눈 뜬 조현진 특유의 안목과 함께 그의 또 다른 과거가 숨어 있다.

  그는 미국에 가기 전 '새드 이미테이션''인어공주는 얼마나 비린내가 날까' 등 소설을 내논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소설화해 가명으로 내놨으며 시나리오 작가로 여러 영화에 참가했다.

  그래서 작가네트는 소설 시 수필 평론 등 문학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으나 시나리오 부문을 중시한다.

시나리오는 자신의 추억에서도 큰 존재였으나 아직 영화계를 떠나지 않는 그의 현실적 존재다.

작가네트는 인기있는 작품을 출판하듯 좋은 시나리오를 영화화할 계획이다.

  작가네트는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은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이 글은 추천 1건당 50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추천수를 조작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도 마련해 두었다.

한 독자가 같은 작품을 여러번 볼 수는 있으나 두 번째 보는 것은 추천수로 산입되지 않는다.

  "원고료는 작가의 은행 통장에 입금하므로 저절로 실명이 확인돼 있습니다.

통신상에 범람하는 익명의 ID나 무책임한 글을 막을 수 있지요.

큰 돈을 벌지는 못해도 '원고료'를 탄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축회원이요? 물론 있지요.

그 터줏대감들도 회사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납니다."

  지난 5월 작가네트는 회원 99명이 쓴 수상들을 묶어 '지금, 우리는 아직 사랑에 서툴지만'이라는 단행본으로 내놨다.

앞으로도 '손쉬운 이별의 99가지 방법'등 공동작품을 내놀 예정이나 인기작가의 장편 등을 내놓는 것이 주목표다.

  작가네트의 올해 목표는 3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한편 미국 일본 중국에 에이전트회사를 두어 전세계의 사이버 글쟁이들을 'zaca.net'라는 테두리에 묶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 출판 게임 만화 등의 작가가 나오는가 하면 이들이 거대한 사이버 공동체로써 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작가네트의 이야기를 듣자 새삼 '역사는 자유의 발전과정'이라는 헤겔의 말이 떠오른다.

인류의 자유는 분명 우여와 곡절을 겪었어도 발전해 왔고 글을 읽고 쓰는 자유가 특히 그렇다.

양피지로 책을 만들던 시절 성경 한 권을 만들려면 양 수십 마리의 가죽이 필요했기에 글을 읽는 자유는 바로 특권이었다.

종이와 금속활자의 개발로 읽는 자유는 보편화됐으나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자유는 특권처럼 제한돼 있었다.

제3의 물결로 그 특권도 기본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
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위원
세계일보 2000-07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