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화 문화인] 아름아시아 대표 고직만씨


   60년대에 경복궁을 '팔아 먹은' 신판 봉이 김선달이 있었다. 경복궁에서 잠옷바람에 삽살개 끈을 쥐고 양치질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이왕가의 후손이라고 했다. 그는 성마저 이씨였으나 현직언론인이고 사기꾼이 아니라 장난꾼이어서 피해자는 없었다. 그는 해외나들이가 잦아 턱없이 '귀하신 몸'소동을 벌인 외국인'친구'들이 피해자라면 피해자였다.

  이제 경복궁을 진짜로 팔아 먹으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경복궁 전체를 무대로 삼아 세계를 상대로 공연을 벌이는 것이다. 사극영화에서 경복궁 그림을 담는 정도가 아니라 궁전 전역과 뒷산(인왕산)까지 동원해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을 오브제로 한 총체극을 내놀 계획이다.

  주인공은 공연기획사 아름아시아의 대표 고직만(高直滿.43)씨. 그도 83년부터 96년까지 영어일간지 기자였다. 명함의 '페스티벌 코오디네이터'라는 요란한 직함과는 달리 변변한 사무실도 없다. 요즘 돈방석에 앉은 스포츠스타와는 또 다른 '움직이는 기업'이다.

  "요즘 큰 페스티벌 기획은 거의 대기업 기획사들이 독점하고 있어요. 이해는 가지만 페스티벌에는 그런 규모만으로 통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관객의 심리를 읽어내는 감각과 이를 추진하는 순발력이지요."

  지난 11월 (57일) 자신이 기획한 제1회 서대문형무소 민족문화예술제 '벽.안과밖'을 예로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사회주의자였던 선친 고정훈(高貞勳)이 도합 10년 넘게 살던 아버지의 집이었고 대학시절(75년) 4개월간 자신의 집이었다. 우연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았을 때 그 '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체험과 본능이었다.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밤이면 앞산에서 가족들이 수감자의 이름을 불렀어요. 그것이 제게는 음악처럼 들렸기에 오래 잊고 있다가도 다시 그 곳을 찾는 순간 '벽.안과밖'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 올랐습니다."

  고직만은 기자시절인 93년에도 시나리오 '웨스턴 애비뉴'를 썼다. LA사태를 소재로 한 것으로 히트는 못 했으나 영화사가 밑지지는 않았다.

  "LA사태 전에 썼으나 영화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가 사건이 나자 다시 찾데요. 재미 한국인 사회의 문제점들을 다룬 것이 시의에 맞아서였지요."

  고직만은 그 뒤에도 '내 마음에 악어가 산다'(최인석 작)를 '내 마음의 악어'로 각색해서 영화사에 팔았다. 그러나 고직만이 신문사를 나올 때는 영화사가 한걸음 앞서 사양길이었기에 그 쪽을 기웃거릴 수는 없었다.

  준비없는 퇴사였기에 그는 1년간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의 서울통신원과 부산국제영화제 페스티벌 데일리의 영문판을 담당하는 등 '언론인'으로 서성거렸다.

  그러나 페스티벌 데일리에서 그는 기자가 아니라 기획자로써 페스티벌을 생각하게 됐다. 고교시절 연극반에서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97년에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호주의 동생에게 갔다. 호주 정부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할 사람을 찾는 광고를 보고 동생이 연락해준 것이다. 그러나 영주권문제가 걸려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취업은 좌절됐으나 호주에 간 것은 행운이었어요. 페스티벌의 본바닥이거든요. 인구밀도가 적어 사람 모이는 기회가 적은 데다 다인종 사회의 이질감도 있어 한 해에 2천여 페스티벌이 열려요."

  호주 체험을 바탕으로 98년 제4회 죽산국제예술제의 기획을 맡았다. 이 예술제는 현대무용가 홍신자가 경기도 안성에 마련한 '웃는돌 예술촌'에서 열리는 것으로 고직만은 기획파트만 담당했다. 이 예술제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독일 스웨덴 등 전세계의 예술가들이 자연을 무대로 삼는 페스티벌이었다.

  고직만이 홍신자를 거들었다기보다 홍신자가 고직만을 돌본 것이다. 기자시절부터 친한 사이였으나 생활고에 찌든 고직만에게 "하고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한 홍신자는 이제 깍듯한 스승이었다.

  죽산축제는 공연기획이라는 첫 경험도 좋았으나 더 큰 소득은 재일동포 공연기획가 강정자(康貞子)를 만난 것이다. '아름 아시아'라는 이름도 강정자가 도쿄에서 10여년 운영한 '아름 퍼포밍 아트'를 바꾼 것이다.

  "죽산예술제를 통해 무대라는 좁고 죽은 공간보다 자연이라는 살아 있는 공간에 대한 믿음을 굳혔지요. 여세를 몰아 문예진흥원의 우수기획공모에 '서대문형무소'를 출품하여 당선하자 공연을 강행한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자연이 아니라 역사를 내세웠으나 통상의 무대를 탈피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고직만이 영자신문, 그리고 문화부기자로 일했던 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감옥살이나 배운 것이 아니라 영문 장서도 물려 받았다. 어려서부터 영문과 친해 대학시절도 영자신문기자로 일한 것이 공연기획에는 더없이 도움이 됐다.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페스티벌을 세계적 안목에서 보는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도 민족주의적 반일이 아니라 화해와 인류애에 촛점을 맞춘 것이었다. 출연진에 일본의 세계적 현대무용가 아리사카 무용단이 참가한 것이 화해를 말해 준다. 여기에다 아프리카의 민족음악가 마마두 둠비아 악단이 합세함으로써 예술제는 한일관계를 뛰어 넘어 인류를 말하게 됐다.

  "무대에 익숙한 관객들은 야외페스티벌에 생소해 하지만 구경을 하게 되면 스스로 출연자가 되지요. 죽산예술제에서 비가 내려 무대고 객석이고 진흙탕이 된데다 무용수의 몸이 젖어 김이 나올수록 더 무용수와 일체감에 빠지는 걸 봤습니다."

  야외공연이라면 다들 날씨걱정이 앞서나 그는 출연자를 쓰러뜨리는 태풍밖에는 무섭지 않게 됐다. 여기에다 무대비용이 덜 드는 것도 빈손으로 뛰어든 그에게는 절대적인 잇점이었다.   고직만은 2000년의 아셈회의와 2002년의 월드컵으로 정치인이나 체육인보다 더 바쁘다.

  아셈회의 참가대표들을 대상으로한 '심청'은 오페라를 오브제로 삼아 소리와 빛 무브먼트를 결합한 총체극이다. 관객들은 광화문을 들어서 근정전 사정전 등을 지나 본무대인 경회루까지 가면서 틈틈이 공연을 보는 것이다.

  이들은 움직이면서 한국 궁전의 자연미를 접하며 경회루에 이르면 조명이 된 인왕산까지 한눈에 보게 된다. 고직만은 청와대 뒷산까지 조명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

  월드컵 때는 상암경기장에서 대형 야외오페라를 여는 문제를 타진하고 있다. 선진국의 음향기술을 도입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 31일과 새해 첫날 제주도 성산일출봉에서 가진 '새천년 성산일출제'는 그 시험'무대'격이었다. 일출봉의 분화구와 그 아래서 열린 이 페스티벌은 크게 두 부분으로 걸궁놀이와 테우 행렬 등 제주의 민속과 4.3사태 희생자를 위한 진혼굿 등 전통예술은 지난 밀레니엄을 정리했다. 새 밀레니엄 부분은 초현대적인 조명과 현대음악과 무용이 아울린 분화구 퍼포먼스가 주류를 이뤘다.

  "시끄럽게 떠든데 비해 막상 얻은 것은 없어요. 다만 한국이 페스티벌의 불모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니 자신이 생겨요. 더 큰 재산은 밑바닥 생활에서 배운 잡초같은 생명력이지요. 여기 이 컴퓨터는 4백만원입니다. 이것을 베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으니 최상류 노숙자 아닙니까."

  노숙이야기를 꺼내자 신바람을 내는 고직만. 여의도 고수부지가 여름나기에는 좋으나 모기가 문제고 그 모기들이 무섭지 않아야 노숙자의 반열에 든다며 노숙 이력을 자랑한다. 그 시절 한끼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고마운 것이 아니라 존경스러웠다니 그는 공연기획자가 되기 전에 눈물어린 빵을 씹는 철학수업을 받은 셈이다.

  그가 '서대문형무소'에 노숙자를 설치미술로 등장시킨 것도 하나의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 같이 노숙했던 이들에게, 어려웠으나 쓰러지지 않은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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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