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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7:26) from 112.187.208.4' of 112.187.208.4' Article Number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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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 통신 1 빠른배송
헤이즐 통신 1 빠른 배송 - 우혜전

얼마 전 책제목을 대며 주문한 그 책이 안 왔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제주도라고 한다. 컴퓨터로 알아보고 전화를 걸겠다 하고 찾아보니 책 제목이 보이지를 않는다. 전화를 걸어 주문자 이름을 묻고, 언제 주문했냐고 하니 보름 전 날짜를 댄다. 나도 모르게 ‘그런데 지금 전화하세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기다렸지요’

배송은 주문한 날 바로 다음날, 아니면 다다음날 배송된다. 한국의 택배 실력은 대단하다. 송장번호라는 것이 있어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포털에 들어가 배송회사 이름을 치고 송장번호 입력칸에 번호를 치면 몇 시에 어디쯤 도착했는지 시시각각 다 나와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이 비행기가 지구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좌석 코 앞 화면에 나타나는 것 비슷하다. 기술 발달로 이런 궁금증이 다 해결되었다. 어디쯤 왔니? 하고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송장번호를 쳐보니 주문 다다음날 도착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구매자에게 송장번호를 알려주고 배송자 연락처를 알려주고 직접 컴퓨터로 확인해보라 하니, 그 다음 감감 무소식이다. 다 잘된 것이다. 이런 일이 일 년에 한두 번 발생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송장번호와 배송자 연락처를 알려주면 아무 연락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지방의 대학생 역시 못 받았다는 전화를 해온 적이 있다. 대학도서관으로 전달받으려고 그리 주소를 해놓았는데,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학생도 보름이 지난 경우여서 내가 송장 찾느라 쓰레기통을 뒤졌다. 송장번호와 배송자를 알려주고 인터넷으로 찾는 방법을 알려주자 즉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다 잘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의 유형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내가 인터넷 창업을 하기위해 이곳저곳 무료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아베이에서 물건을 외국으로 팔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옷을 팔았던 모양이다. 오늘 주문해놓고 언제 오냐는 전화를 안 받아서 좋다고 하였다. 주문 바로 다음 날 전화해서 왜 안 오냐고 하는 전화도 없다고 하였다. 외국이다 보니 일주일은 보통 걸린다고 생각하고, 언제 오냐는 연락도 거의 없다 하였다. 외국인들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었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라는 영상인지 글인지도 본 적이 있다. 우스개 중에 빨리 갖다달라는 말 듣기 싫어 미국으로 이민을 간 중국집 웨이터가 미국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와서도 한국인이 빨리 달라고 하자, 여기까지 따라 와서 ‘빨리빨리’라고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케익을 굽는 중간 중간 오븐 유리창을 들여다보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 중 자판기 커피가 다 나왔나 안 나왔나 보다가, 다 나오기도 전에 종이컵을 빼 물이 흥건하게 만드는, 그런 한국인이 아닌가 생각 들어 피식 웃을 때가 있다.

타이밍이 나쁜 경우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며 받은 전화이다. 수화기 저 너머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버스 안에서 받았다. 주문을 안했는데 책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가족 중 누가 주문한 사람이 없을까요?’ 하고 물으니 옆에다 대고 ‘당신이 주문했어?’ 하고 묻는다. 안 그랬다는 모양이다. 그 다음 말이 걸작이다. ‘어떻게 내 주소를 알고 주문하지도 않은 책을 내 주소로 보냈나’고 한다. 내가 그 남자 분 스토커라도 된 분이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친구 만나서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누가 주문했을까, 어떻게 된 일일까 하는 얘기만 하다 왔다. 그 친구가 무슨 죄인가? 몇 시간 후 집에 와 송장번호를 확인해보니 도착이 된 걸로 나온다.

그래서 다시 전화하니, 아, 아들이 주문했단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사용했을 텐데 괜찮겠냐고 하니 미안한 듯 괜찮다고 한다. 이 얘기를 주위사람들에게 했더니 요즘 하도 개인신상정보를 팔아먹어 자기도 모르는 물건이 자기 집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등등해서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혹시 자신의 주소가 남에게 도용당하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 어떤 이는 자기도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라 주문해놓고 자기 주소에서 못 기다려 물건이 모이는 곳을 물어 거기까지 가서 찾아왔다고 한다. 오늘 주문해 내일 받으면 사람들이 왜 빠른 배송 감사합니다라고 글을 남기는지 모르겠다고 누구에게 말하니, 주문하고 내가 산 물건을 즉시 갖고 싶은 마음이 다음 날까지 지속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다다음날 받으면 그런 좀 마음이 식는다고 한다. 인터넷은 직접 물건을 보고 만지고 살 수 없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언제 받을지 모르다가 하루 만에 받으면 기쁜 것이다.

처음 인터넷 헌책방 헤이즐넷을 연 후 배송메시지에 ‘빠른 배송 부탁합니다’ 라는 글귀가 있어 놀라 입접해있는 쇼핑몰에 전화 걸어 물어보았다. 이런 경우 ‘퀵’같은 배송을 해야 하는지 하고. 배송비는 같은 가격으로 구매자가 결제를 했는데 내가 퀵으로 보내려면 돈이…….    돌아온 대답은 그냥 빨리 보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빨리 보내려도 택배기사가 수거를 하고 운전을 해서 밤새 가려면 내일이라야 도착하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당일배송’ 같은 광고를 보고 책이 하루 지나 도착하는 것이 내가 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은연중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빠른 배송이라는 말에 뭘 어떻게 해야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나 걸려 배송된 책을 보고 글을 남기는 것도 의아했었다. 지금 보니 당일 배송하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하루나 이틀 만에 온다고 한다. 내가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보름 후에나 연락하는 새로운 유형의 한국인이 등장했다. 나로서는 기다리는 한국인을 경험한 것이다. 헌책방을 계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헌 책 사러오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마켓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공지를 올려야만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받아놓고 말을 안했거나 등등 책이 집에 가까이 있는데 속을 썩이며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주문한 지 5일 후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전화를 주세요’  

아무리 999명이 다 주문한 책을 받았다 하더라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 한 명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하다. 나에게도 큰일이다. 일단 주문한 책이 손에 들어가야 한다. 책 내용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책을 산후기에 빠른 배송 감사합니다가 제일 많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나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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