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머시기... 짧게 씀으로써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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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10:15) from 203.100.186.46' of 203.100.186.46' Article Number : 164
Delete Modify 우혜전 (hazelwoo@hanmail.net) Access : 8619 , Lines : 19
학교의 추억
내가 74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하자 신방과 선배라며 나타나 처음으로 구내식당이란 곳으로 가 밥을 사 준 일이 36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기억난다. 그 선배는 안티 미스 코리아 운동 등을 펼치면서 여성운동을 최근까지 하였다. 또 다른 한 선배는 회사 근처 조선호텔로 가 따뜻한 우유를 부어 마시는 카페오레, 요즘은 카페라떼 라는 커피를 사주었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있다 삼 년 전 돌아와 보니 그 선배는 내가 총무로 일했던 한국여기자클럽을 사단법인이라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은퇴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다른 신문사에서 중견으로 여성난을 꾸미며 여성단체 소비자단체를 취재하던 중의 일이다.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이대 선배들은 나만 보면 후배라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한번은 백화점이 세일을 한다면서 반값이라고 선전을 하였으나 사실은 정상가를 받으면서 정가를 두 배로 올려 고쳐 놓고 마치 반값인 것처럼 판 것이 소비자고발로 소비자단체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기사감이라 기사를 쓰게 되었다. 별로 주목받을 일이 없던 부서에서 뉴스감이 터지자 기자의 눈이라는 칼럼도 썼다.

그런데 다음 날 갑자기 편집국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소스를 통해 소비자 단체가 백화점 측과 점심을 먹었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소비자단체를 믿고 글을 쓴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신뢰도가 빵점이 된 것이다.

그 때 바로 편집국으로 한 선배가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점심값을 안냈다는 것이다. 영수증이 있느냐고 묻자 보여준다. 밥값을 계산하고 그 영수증을 백화점에 돌려주고 밥값을 계산하라고 하니 그 선배는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갔다. 나는 그 일로 인하여 공짜점심을 먹지 않아야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요즘 혼자서 밥 먹으면서 안심이 된다.

동기 중 재일교포가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 일본 텔레비전을 보고 자라 이런 저런 얘기를 그 친구와 나누곤 하였다. 앞으로 졸업하면 뭐가 되고 싶은가 하다가 나는 기자가 되겠다고 했고 그 친구는 ‘편론가’라고 되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무식하게 ‘평론가’가 뭐니 하고 물었다.

연극을 하던 다른 친구 덕에 나는 또 신방과 연극 무대감독으로 연극공연 준비에 참여하였다. 명동에 가면 연극 보려고 극장 앞에서 표사려고 죽 줄서있던 발랄했던 과 동기들도 생각난다. 신방과 연극을 인기로 만들었던 그 친구는 무슨 영화나 연속극에서처럼 백혈병으로 죽었다. 그 친구의 보이 프렌드는 연극을 계속했다. 얼마 전 런던에 명성왕후 뮤지컬을 들고 왔기에 공연 보러가 몇 십 년 만에 만났다.

지난해 2009년에는 이화동창회 백년사 집필 작업에 참여하게 되어 신방과 선생님이 회장으로 일한 70년대 기록부문을 맡아 쓰게 되었다. 휴강이 잦아, 별로 마음이 우러나지 않았던 교수였는데 알고 보니 이화대학역사를 쓰고 동창록을 만드는 등 학교를 위해 애를 많이 쓴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함께 바라보며 나를 성장시켜준 이런 저런 인연들, 함께했던 짧았던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다.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니어 저널 언론영상학부 창설50주년 기념 특집호 2010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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