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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7 (08:31) from 220.120.23.87' of 220.120.23.87' Article Number : 117
Delete Modify 박강문 Access : 9151 , Lines : 24
일본 잡지에 쓴,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 글 일부
일본 잡지에 쓴,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 글 일부


사실상 이 세상에는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 만 한 일도 없는 법이다. 불행 중에 행복이 있고 또 행운 속에 불운이 따라 오기가 쉬운 것인데 한국의 國權喪失(국권상실)로 인한 日韓合邦은 민족적인 불행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불행 중의 多幸이었는지 不幸이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접근해야 할 이유는 한국이 국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 중의 어느 한 나라에 合倂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국제정세와 열국과의 관계를 잘 알게 되면 한국이 당시에 러시아에게 점거 倂呑(병탄)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만일 러시아에 合邦 병탄되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생기며 어떻게 되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하여 한국은 공산화를 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스탈린이 집권하자 그는 1930년대에 그랬듯이 대규모의 民族移住政策(민족이주정책)을 강행하여 한국민들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奧地(오지)로 移住시켜서 마구 분산 수용하였을 것 같다.

그에 앞서서 스탈린은 러시아에서 농업집단화 정책을 강행하였는데 수천만명의 러시아농민을 학살하였다. 이런 통치행태로 보아서는 한국민의 저항을 짓밟아버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어떠면 일천만명? 이상)이 학살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의 한인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移住(이주) 시켰다면 한국인들은 오늘 시베리아의 高麗族(고려족들처럼 실향민) 신세가 되었을 것이 아닌지?

일본은 3.1운동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천만이 아니라 천명을 크게 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경찰이나 헌병에 의하여 체포되어서 獄苦(옥고)를 치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더 많이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또 한국농민을 만주의 간도로 이주를 권장하였다고 하나 소련과 같은 강제성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서 한반도가 러시아에 의하여 점거되지 않고 일본에게 합방되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오히려 근대화가 촉진됨으로써 잃은 것에 못지않게 얻은 것이 더 많았음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필자가 또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것이 不幸중 多幸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또 문화적인 뿌리가 같았음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식민통치의 기간을 통해서 더욱 성장 발전 강화되었을망정 소실되거나 약화된 것이 없었다. 한국의 역사나 語文學 등 韓國學 연구의 기초를 세워준 것이 오히려 일본인 학자들과 그의 한국인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이런 말에 또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객관성을 중시함이 학문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물론 일제가 학교에서 한글교육을 폐지하며 朝鮮語(조선어)의 연구와 사용을 금지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1937년부터이며 1945년에 태평양전쟁이 끝났으므로 한국어문학에 큰 손실을 입은 바가 없었다. 만일 한반도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나 英美등 서방국가에 의하여 식민지 지배를 받았더라면 그 문화적이 뿌리가 너무 다름으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성장이나 심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을 것 같다.

이 뿐 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영어의 sibling rivalry(어린 자매들 간의 경쟁의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인에 대하여는 무조건 지지 않으려는 경쟁의식을 갖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들의 성장 발전의 의욕을 크게 자극하여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빠른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천만 다행이며 저주할 일이기 보다는 도리어 축복이며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해야할 사유는 될지언정 日政 35년 동안 일본에게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것 때문에 나무라고 규탄하거나 죄인취급을 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거사의 진상규명 노력도 이런 거시적이며 객관적인 차원에서 또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하여 긍정적인 시각에서 진상을 규명하려고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박강문 wrote: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것은,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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