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칼럼니스트]

2000년 12월 3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9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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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한 오해와 그 거품

보통 사람들은 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 벅찬 자신과는 상관없는 걸로 치부해 버린다. 매우 유식하고 고상한 사람들이나,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이들이 한가롭게 즐기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맞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의 개념이 워낙 광범위한 탓도 있지만, 이른바 문화인과 지식인의 상당수가 문화를 잘못 알고 그릇 전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현상에는 이런 오해와 그에 따른 거품이 두텁게 덮여 있다. 이를 제거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과제요 문화의 본디 얼굴을 되찾는 올바른 방향이다. 그것이 또한 문화산업시대, 문화의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맹목적 문화귀족주의에 빠진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문화를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등 예술분야에만 국한시켜 생각하며 거기에 종사하는 자신들을 대단한 엘리트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예술은 무엇보다도 천재성과 창의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서 다 우수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런 증세가 매우 심한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고상한 작품과 의도를 알리 없다고 믿는 시중의 갑남을녀를 낮게 보거나 심하면 경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일반시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그들끼리 모이고 딴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문화라는 허울을 쓴 속물, 위선자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인이라면 고개를 돌린다. 이들 중에서 문화와 예술을 앞세워 권력을 집요하게 쫓거나, 금력 앞에서 별의별 추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가끔 발생하는 내분이나 분규의 대부분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문화사대주의자들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앞의 사이비 문화예술인들과 비슷한 부류인 이들이 끼치는 해악 또한 심각하다. 이들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것이라면 깜빡 죽으며 우리 문화는 형편없거나 아예 없는 걸로 치부하길 서슴지 않는다. 문화란 것은 흐르는 것이어서 선진국 문화가 후진국에 영향을 미치고 전파되는 현상을 거부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선진국의 문화를 우리 체질에 맞게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바람직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실도 기하지 않으면서 그걸 핑계로 우리 것을 파괴하려고 기를 쓴다. 예컨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인 체하기에 급급하다. 불쌍할 정도다. 외국문화를 수입하여 우리 것을 풍부하게 해야 하는 본래 임무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이다. 일반인들이 이들을 보면서 문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셋째 문화국수주의자들 역시 바른 문화인식을 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화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하면서 발전하고 시대에 맞게 변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문화의 파괴라며 어떤 변화나 현대화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문화사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의 근본과 핵심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이비종교 신도들처럼 맹목적, 교조적으로 우리 것이 훌륭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오늘에 되살리기보다 골동품, 박제품으로 만들어 으슥하고 구석진 곳에 처박아 놓으며 그걸 보존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지만 문화후진국일수록 심하다. 우리나라도 그런 점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문화하면 자신들과 관계없고 돈이 많거나 아는 체 하기 좋아하는 사람 또는 좀 별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해버리고 만다.

문화를 좀 거칠게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실현하는 모든 형식과 활동, 그 결과의 산물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습관, 사고방식, 언어, 풍속, 정치, 경제, 교육 등 신념과 가치, 제도와 관습 등이 모두 문화에 포함된다. 결코 특정인들만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또 문화는 그렇게 한가롭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다. 문화제국주의라는 말이 있듯이 강대국이 약소국의 침략과 점령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동원하는 엄청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한 뒤 말과 글을 말살해 우리의 정신까지 완전히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고취시키고 그 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문화인들과 교육계, 문화계가 이 같은 오해와 거품을 씻어내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도 문화가 자신의 생업과는 상관없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적극 관심을 갖고 의사를 표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화산업, 문화상품 등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풍부한 토양이 뒷받침할 때 국가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문화의 세계화, 문화상품의 경쟁력을 아무리 부르짖어 봐야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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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200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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