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8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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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 언론 회고

언론의 임무와 위치를 분명히 자각하고 반성하라는 요구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만큼 강력하고 거셌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날로 커져 가는 인터넷의 힘과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이 주된 이유라 하겠다. 이는 수위를 더욱 높이며 전방위 공세를 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사와 종사자들은 청맹과니가 된 듯해 안타깝다.

인터넷 신문과 방송 이른바 대안매체들이 기존 매체에 퍼부은 공세는 위협적이었다. 여당의 '386 세대 5.18 술판,이 좋은 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터넷 신문에서 먼저 보도한 이 기사는 기존매체들이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사회와 정치권을 흔들었다. 모 방송과 어느 신문의 사건담당기자들이 출입처 경찰들과 충돌했다가 인터넷매체와 네티즌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던 것도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기존 매체들은 나중에 마지못해 이를 조그맣게 다루었지만 진지한 반성의 자세를 보여준 신문이나 방송은 드물었다. 기존매체가 여론의 주요 집산지이므로 다른 쪽 소리는 변방의 하찮은 흐름쯤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총선시민연대가 출마부적격자를 가려내고 낙선운동을 펼친 것은 본래 사명을 망각한 언론을 정면으로 추궁하며 대신 임무를 수행한 뜻 깊은 일이었다. 기존 매체들은 이 뜻을 제대로 읽고 괴로워하며 각성해야 했다.

그러나 언론계는 뇌졸중 환자처럼 의식이 흐릿했다. 권력의 불순한 의도에 따라 과보호를 받던 과거의 불건전한 안락과 금력의 당근 맛에 취한 탓일까. 아니면 언론 사유화를 획책하며 공공성을 유린하는 자사이기주의에 함몰된 탓일까.

그러다 보니 4월의 총선에서 언론은 오히려 알게 모르게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분단이후 남북한 정상의 첫 만남과 8월의 이산가족 상봉 보도는 감정과 흥분이 주류를 이뤄 비난을 면치 못했다. 기아로 곧 망할 것 같은 북한과 비정상적인 인물의 대표로 꼽히던 김정일위원장을 하루 아침에 다르게 보도하면서 과거에는 왜 그랬는지 설명이 없는 언론에 대해 지금도 불만이 많다.

언론계가 이처럼 자기 본분은 소홀히 하면서 권력, 금력, 사주의 이익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직업윤리를 팽개치며 비리를 자행하는 언론인들이 드물지 않은 풍토에서 시민들의 비난이 높아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의약분업, 연이은 금융권 비리 보도에서 당사자들 못지 않게 언론을 비난한 것은 언론계로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독자. 시청자들의 이런 시각과 무관 하지 않다.

사회와 시민의식, 언론환경의 변화 속도로 보아서 올해의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호미로 막을 단계는 이미 지났지만 아직 가래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될 때 서둘러야 할 것이다. 기존 언론노련이 11월에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 재출범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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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관훈클럽 '관훈통신'200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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