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1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8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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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전화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2)

90년대 중반까지 한국통신에 짭짤한 수입을 안겨주었던 공중전화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핸드폰 소유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공중전화수입이 크게 감소해 그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통신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공중전화의 매출이 98년 7천2백28억원으로 정점을 이루다가 지난해 6천1백91억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4천억원으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출액은 앞으로도 매년 3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데 낙폭이 더 클 지도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감당하고 있는 공중전화 손실액도 자꾸만 불어나 98년 5백64억원이던 것이 99년 1천5백51억원이었고 올해는 2천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하니 한국통신으로서는 여간 걱정이 아닌 모양이다.

공중전화 보급대수도 90년대 후반까지는 날마다 1백대 이상 늘어났으나 올들어 하루에 20∼30대씩 줄고 있다고 한다. 95년 33만대였던 공중전화는 98년에 50만대, 99년에는 핸드폰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56만대까지 늘어나던 것이 올해부터 급격히 감소세를 보여 연말에 가면 54만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54년 공중전화가 첫선을 보인 이후 46년만에 처음이라는 것이 한국통신 관계자의 얘기이다.

한 때는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민원이 공중전화를 놓은 일이었다. 공중전화가 있어야 손님이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통신측은 아무 곳에나 설치해주지 않고 일정규모 이상의 조건에 맞아야만 설치를 해주었다. 공중전화 놓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제는 너도나도 핸드폰을 갖게된 시대가 된 탓에 고속버스나 기차 안에 설치해놓았던 공중전화도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공중전화카드도 점점 쓸모가 없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몇 년 전 같으면 몇 달에 한번은 사야했던 공중전화카드를 지금은 몇 년 째 지갑이나 수첩에 넣어 다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가 핸드폰을 집에 놓아두고 나왔을 경우 한번씩 쓰는 비상용품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화 한 대 놓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는데 10여년 사이에 이렇게 사정이 변했으니 통신에 관한 한 상전벽해라고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닌 것 같다.

전화놓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79년에 전국의 전화적체건수가 무려 61만9천건(서울은 18만건)이었던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다행히 86년에는 세계에서 열번째로 한국형 전자교환기 TDX-1을 자체개발, 신청즉시 전화를 가설해주는 체제를 갖추면서 오랜 숙원이었던 전화적체해소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화사정이 좋아지면서 이해부터 일반가정에서도 2대 이상의 전화를 마음대로 놓을 수 있게 됐으며 87년에는 마침내 「1가구 1전화시대」를 맞으면서 전화가입자수도 1천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86년까지는 한 가정에 2대 이상의 전화를 놓는 일은 불가능했다. 당시 필자는 「한가정에 두 대 이상의 전화를 놓을 수 있다」는 기사를 타지보다 먼저 썼던 기억이 있다. 이른바 특종기사였다. 지금의 후배기자들이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특종이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때만 해도 전화를 신청하면 즉시 놓아주고 한집에 두 대 이상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꿈같은 얘기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게 귀했던 전화도 불과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휴대폰이라는 첨단기기의 위력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음은 "정말로 시절이 변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휴대폰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통화를 하게 해주는 것인 탓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수품 제1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보급률 44.8%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홍콩,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6위이며, 휴대폰 보급 대수만으로 따지면 미국, 일본, 중국,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5위라고 하니 이동전화에 관한 한 선진국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나라 휴대폰 가입자 수는 지난해 9월15일 2천1백3만4천명을 기록하면서 시내(유선)전화 가입자 2천78만2천면을 넘어섰으며 1년여가 지난 지금은 2천7백만명 가량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천만명 돌파는 시간문제인 것 같다.

휴대폰은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문명의 이기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두들 휴대폰을 갖고 있으니 소식이 궁금하면 금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약속시간이 늦었거나 바뀌었을 때는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된다. 옛날처럼 무작정 기다리거나 현재 있는 곳을 몰라 애태우는 일은 없어졌다.

신문이나 방송사의 사회부 사건기자들처럼 휴대폰의 이점을 십분 이용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80년대 이전 전화가 귀했을 때는 현장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일이 제일 큰 문제였다. 특히 시골이나 산골, 외딴 곳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마감시간에 맞추기 위해 취재하다 말고 몇km나 떨어진 곳까지 걸어나와서 기사를 전화를 불러줘야 했다.

그나마 다른 회사 기자와 같이 갈 경우는 먼저 전화통을 잡는 경쟁까지 벌여야 했다. 전화기를 일찍 차지해야 제시간에 송고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우 발견한 전화를 타사 기자에게 선점당했을 때는 다른 전화를 찾아 또다시 뛰어야 했다.

당시 대학입학원서 접수 마감날도 그랬다. 각 대학에서는 기자들을 위해 홍보실 같은 곳에 별도로 5∼6대의 전화를 임시가설했다. 그런데 그놈(?)의 원서접수 마감시간이 늘 지방판 기사마감 시간보다 늦어서 애를 먹었는데 전화를 빨리 잡아야 접수현황을 회사에 불러줄 수 있었다.

그래서 고참들은 전화 가까이에 있다가 대학당국이 각 학과의 지원현황서를 배부해 주면 잽싸게 전화통을 잡았으며, 그 자리에 전화가 없을 때는 다른 사무실의 전화를 미리 눈여겨 두었다가 지원현황서를 받자마자 재빨리 뛰어가 송고했다.

참으로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이런 일은 80년대 중반까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요즘의 기자들은 그럴 필요 없이 급하면 전화로 부르거나 팩스, 또는 e메일로 보내면 「상황끝」이어서 전화에 관한 한 복도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겠다.

당시 사건기자들의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동전이 가득 차 있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행여 기사 송고 중에 동전이 떨어지면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마감시간이 급하면 장삿집이든 가정집이든 가리지를 않았다. 체면이고 뭐고 간에 사건기자에게는 기사송고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 기사 부를 전화를 찾지 못해 사건현장에서 발을 구르던 일, 그래서 전화 있는 곳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일은 옛일이 돼버렸다. 휴대폰이 시급한 상황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지난 일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아득한 옛날의 얘기로 들릴 것이다. 의심 많은 사람이라면 거짓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불과 10여년 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만약 전화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세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전화야말로 물과 공기처럼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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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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