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1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79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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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 문화인]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 이각규 소장



스크루지를 가까이 하면 재수가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런 마을이 있다. 돈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스크루지'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그 어두운 사람이다. 그 마을은 디킨스가 태어난 잉글랜드의 모츠머스나 그가 살던 런던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영국과는 반대쪽인 텍사스주 갤베스턴의 스트랜드지역이다.

이 도시가 매년 12월 첫 주말이면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작가인 디킨스를 내세워 이벤트를 여는 것이다. 이 축제에는 디킨스 작품의 주인공들이 총출동하나 크리스마스를 앞둔 쇼핑객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단연 스크루지다.

74년부터 시작된 이 이벤트는 도시의 외관을 바꾸었다. 축제기간에 많은 주민들이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다. 이벤트가 인기를 끌자 시당국이 많은 건물을 개조해 12월이 아니라도 19세기의 런던을 떠올리게 한다.

이벤트는 이처럼 도시의 얼굴마저 바꾼다. 그것도 전쟁이나 도시계획처럼 처절하거나 살벌하지 않고 즐겁게 바꾼다. 선진국에서 '이벤트'는 이미 일상용어같이 쓰이고 있으나 아직 한국에서는 그 뜻도 확실히 가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지역문화이벤트연구소의 이각규(李覺珪.43)소장은 한국에서 '21세기 문화인'이다.

"한국에서 이벤트가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가 없었던 점이지요. 지방자치와 비슷한 시점에 '이벤트'라는 말이 떠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방자치 이전에도 이벤트와 비슷한 것은 있었으나 중앙정부의 그것은 규모만 컸지 감동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방에서 열린 것은 너무 규모가 작고 초라해 동네잔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벤트는 어느 지역의 오랜 전통이나 특성을 바탕으로 해서 이를 아끼는 주민의 향토사랑을 나무처럼 가꿀 때 꽃피는 것이다. 막상 돈이나 중앙정부의 지원은 부차적일 수 있다.

디킨스 축제도 처음에는 마을 잔치처럼 시작했으나 주민들이 호응하자 규모가 커져 요즘은 10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돈주머니가 됐다. 그 성공의 비결은 고전적인 유적이 많은 이 지역의 특성을 살려 빅토리아여왕 시대와 이를 상징하는 디킨스를 끌어들인 안목이다.

실은 이각규가 95년 기획해 성공시킨 '이천 도자기 축제'도 그런 것이다. 이 축제는 그때까지 8년 이상 계속됐으나 이벤트의 특성을 살리지 못해 그저 도자기 산지의 연례행사로 끝난 것이다.

"도자기는 이천지역의 특산품이기에 앞서 한국문화의 정수라는 것을 부각시켰지요. 도자기도 그저 구경시켜 팔기만 할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직접 참가하도록 '내가 만든 도자기 코너'를 개설하자 전체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도자기요? 잘 몰라요. 선진국의 이벤트들이 모두 '참가하는 이벤트'라는 점을 도자기에 적용했을 뿐이지요."

이각규가 성공시킨 금산인삼축제에서도 관광객들이 직접 인삼을 캐는 코너를 곁들이자 축제 전체가 삼을 먹은듯 힘이 넘쳤다.

그런 저런 경험을 살려 이각규가 최근 펴낸 '21세기 지역이벤트 전략'은 지역이벤트의 초년생인 한국에서는 교과서같이 됐다. 그러나 실은 그가 이벤트 전문가가 된 것이야말로 '이벤트'다. 사전의 '이벤트'(Event)에서 맨 윗자리에 앉은 풀이는 '사건'이다.

84년 부산 산업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롯데전자 광고실의 디자이너로 입사한 그는 너무나 흔한 신입사원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행사를 기획하기는커녕 '사내 행사'의 심부름도 버거웠다.

"어느날 사장실에 보고차 들렸더니 같은 계열인 롯데쇼핑이 주최하는 창미패션쇼의 초청 티켓을 주면서 대신 가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현장에서 패션쇼를 보자 너무 역동감이 있어 넋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저와 너무 인연이 멀어 보였어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이듬해 롯데계열의 광고대행사인 대홍기획 판촉 플래너로 옮겼으니 패션쇼는 아니나 역동감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벤트'라는 말은 모른 채였다.

그 2년 뒤인 87년 이각규가 일본의 제일기획사로 3개월간 연수를 간 것은 그의 운일 수도 있고 그가 두드린 문을 운명이 열어준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처음으로 이벤트를 사례중심으로 배우고 주말이면 현장에서 현장을 찾아다녔다.

이벤트가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 것은 산베이 마사히로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좁은 공간에서 직원 10명이 조용히 일하면서도 마돈나 공연 같은 세계적 대공연을 치러내는 것이 신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귀국한 이각규는 이듬해 88올림픽 문화행사중 '세계음식축제'의 기획과 컨설팅으로 시작해 대전엑스포에서는 홍보, 문화행사 등의 기획을 맡아 본격적으로 이벤트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각규가 95년 9월 이천도자기축제를 기획하기까지는 그 이름도 '이벤트'도 대중에게는 낯설었다.

"당시 문화관광부의 이유범 사무관(현재 서기관)이 지역축제의 관광자원화를 입안하고 제게 기회를 준 것이 맞아떨어졌지요. 도자기 축제만이 아니라 어느 이벤트나 주최측과 주민의 의식에 못지않게 행정부서의 안목이 중요합니다."

이 축제가 성공하자 그의 성가와 함께 이벤트붐이 일어 그는 96년의 금산인삼제, 98년의 강화 고인돌축제로 바빠졌다. 98년에는 서울광고기획을 떠나 자신의 이벤트연구소를 차렸다.

이각규는 사업전망을 낙관한다. 지난해는 다소 적자를 보았으나 올해는 균형을 맞춰서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벤트 문화가 낙후한 그만큼 미래산업으로서 전망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다든가 특성있는 지역문화는 이미 연례행사가 돼서 개발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비웃는 말이기도 하다.

"춘천의 인형극축제는 관광행사인 이벤트라기보다는 예술적 축제지만 이벤트의 가능성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원래 춘천은 인형극과 아무 인연이 없었으나 주최자들의 안목이 있어 세계적 축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벤트 문화를 위해서는 한국적 이벤트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한국의 '현실'이 있고 이를 수용할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벤트를 열면 좌판이나 포장마차 등이 몰려오거나 이런 저런 이익단체들이 손을 내미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를 모두 물리치면 무리가 따르기에 좌판상인들의 지역을 미리 기획해 두어 혼선을 막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고 요령이다.

지난날에 비해 관의 권위주의는 적어졌으나 아직도 남아 있고, 그것이 또 한국의 현실이다. 일부 욕심많은 단체장들이 좋다는 행사를 다 집어넣으려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것을 다 수용하다 보면 이벤트는 특징이 없는 난장이 되나 그 단체장을 설득하는 것도 이벤트다.

그래서 이각규는 반쯤은 관리가 되어 가고 있으나 다른 한쪽에서는 역사학자가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여러 대학에서 이벤트를 강의하는 이벤트학자이기도 하다. 그 어느것도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꿈도 꾼 적이 없다.

"이벤트에 빠져 들자 고증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역사에 관심이 생겨납니다. 내년 4월 영암에서 열리는 '왕인(王仁)문화축제'도 그런 것입니다."

일본에 한문을 전래한 왕인이 영암에서 출항했다는 학설에서 비롯된 이 행사도 오래된 것이나 그것을 단순한 왕인의 차원에서 백제문화 차원으로 끌어올려 백제시대의 서민문화를 재연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엔 무용가 이애주(서울대 교수)의 춤이 곁들인다.

"사람들이 고향을 잃어가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 마당에 무슨 이벤트가 성공하겠느냐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데 이벤트의 가능성이 있지요."

21세기에도 '난장'은 있어야 하고 그것을 21세기의 문화로 포장하는 이벤트산업은 미래산업일 뿐 아니라 유망산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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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yangp@sgt.co.kr
세계일보 200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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