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7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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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의 力走

요즘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 워낙 많아서 감동이 더 컸을까.이봉주 (李鳳柱)가 후쿠오카 마라톤 대회에서 막판에 세계 강호들을 하나하나 제칠 때의 장면들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비록 우승까지는 못하고 둘째로 들어왔지만,5위에서 앞의 세 선수를 맹추격하여 앞지른 투혼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우리가 이선수에게서 큰 감명을 받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다

그는 두 달 전 시드니 올림픽에서 스페인 선수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24위로 결승선에 들어와야 하는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다.소속된 팀에서 코치와 함께 나와 한동안 무적자 상태로 연습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드니야말로 명예 회복의 기회라고 별렀던 터라 그 자신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런데다,훈련 부족이니 작전 오류니 하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그 때 넘어져 벌어진 거리를 도저히 만회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를 마친 그에게 오히려 감동한 사람도 많았다.그를 위해 만들어진 홈페이지에 어느 팬은 다음과 같이 썼다.〈저 사실 봉주형 팬은 아니었는데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뛰시는 모습을 보고 봉주형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또 어떤 팬은 이렇게 썼다.〈넘어지고도 일어나 다시 뛰어 완주한 당신을 난 사랑합니다. 금메달보다 더 소중한 건 당신이 뛰고 있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것입니다.당신은 최선을 다했기에 그 어떤 금메달리스트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승자에게 환호하기는 쉽고 패자를 격려하기란 어렵다.따뜻하게 격려할 줄 아는 팬들이 있었기에 이봉주는 실패의 쓰라림을 극복하고 오똑 일어날 수 있었는지 모른다.마라톤 완주 바로 두 달 뒤 다시 경기에 도전한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다. 아마 이봉주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이번 후쿠오카 대회가 마라톤 완주 24번째다. 이만한 완주 기록을 지닌 선수는 드물다.

마라톤은 우리 국민에게 각별한 종목이다.나라 잃은 시절 손기정 (孫基禎)과 광복후 서윤복(徐潤福)의 마라톤 세계 제패는 엄청난 감격이었다. 지금도 마라톤만 우승하면 올림픽 모든 종목을 이긴 듯 감격하는 것이 우리다.근년 여러 도시에 마라톤 동호회가 많이 생겨 활동이 활발한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이봉주는 국민에게 모처럼 엔돌핀 솟는 기회를 선사했다.그에게 감사하면서도 사실 시드니 올림픽 끝난 뒤 그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미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잘할 때만 ‘국민 마라토너’라고 부를 것이 아니다.이번에 본 일본 마라톤의 무서운 성장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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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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