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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2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6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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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5일 [그해오늘은] '半鮮郞의 日 美人'



국초(菊初) 이인직(李人稙)은 좁게 보면 '신소설'의 개척자이고 넓게 보면 현대문학의 원조다. 그러나 이런 렌즈의 폭과 상관 없이 그를 보는 또 다른 렌즈가 있다. 친일지식인. 1916년 오늘 그가 조선총독부병원에서 눈을 감은 것은 우연일 수도 있고 친일의 일생을 소설의 마지막처럼 장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인직의 삶을 대할 때마다 딱한 것은 그에게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는 점이다. 오늘날 그의 친일행각을 비판하기는 쉬우나 당시 친일을 피하면서 신소설로 가는 길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1862년 경기도 이천 태생인 이인직은 갑오경장 때 친일망명정객 조중응을 따라 일본에 가면서부터 일본의 '신소설'에 매료된다. 그래서 1906년 '만세보'의 주필로 첫 신소설 '혈의 누'(血의 淚)를 쓰나 그의 삶은 '피눈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듬해 '만세보'가 경영란에 빠지자 이완용의 도움으로 그 시설을 사들여 대한신문을 창간해 사장으로 앉는다. 1908년에는 원각사를 세워 신극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이완용의 비서로 고종퇴위와 경술국치에 앞장섰으니 그의 삶에는 민족사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되었다.

개화지식인으로 봉건타파와 관료들의 가렴주구를 비판하는 그의 모습은 갑오농민전쟁에 동참한 지식인 같았으나 그 해결책을 척양척왜(斥洋斥倭)가 아닌 봉건왕조의 철폐에서 찾음으로써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그의 단편 '빈선랑(貧鮮郞)의 일미인(日美人)'의 주인공은 이인직 자신일 수도 있다.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가 동거하는 자체가 그렇다. 다만 그것은 가난한 한국인(빈선랑)이 아니라 반쪽 개화지식인 '반선랑'(半鮮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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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yangp@sgt.co.kr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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